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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주성모’ (주님과 성경을 위한 모임)

정영란(카타리나·대구 월성본당)
입력일 2022-07-12 수정일 2022-07-12 발행일 2022-07-17 제 330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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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 부지런한 사람들 뭐한다고 주말에 이런다요? 게으르고 늘어진 주말들 보내시오. 꼭 실천하시오.”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나와 직장 동료 H를 가리킨다. 게으르고 늘어진 주말을 실천하라며 메시지를 보낸 P도 직장 동료이다.

바다 바람처럼 거세면서 시원한 초여름 오후, 우리는 수변 공원에 모였다. 사람이 거의 없는 자리에 P는 휴대용 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트렁크에서 꺼냈다. 나는 물기 없는 것을 확인하고 벤치에 앉았다. 벤치는 오래 못 앉아 있을 거라면서 P는 연신 자기 의자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등이 편할 거라며 벤치를 고집했다. 휴대용 의자가 편할 거라는 P의 제안에 내가 선뜻 앉기가 연장자로서 편하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퇴근하기 직전에 가게에서 산 김밥과 에너지바, 음료수 세 개를 가방에서 꺼냈다. P는 포장 배달한 치킨과 과자를 꺼냈다. 천상의 맛이 이런 것일까. 우리는 저마다 맛 칼럼니스트가 되어 혀가 영접하는 음식에 대해 칭찬을 했다. 두 번 다시 같은 음식을 같은 장소에서 먹지 않는다는 내 신조에 금이 갈 것만 같았다. 언젠가 꼭 이 곳에서 이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다는 최상의 표현이 떠올랐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모일 수 있었던 것은 가톨릭신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같은 곳에서 일한다는 점도 이유가 되었다. 서글서글한 P가 귀여운 H와 나에게 제안을 했다. ‘주성모’. 즉 주님과 성경을 위한 모임이다. 같이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H는 처음에 망설였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 꼭 무슨 일이 생겨서 끝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우리가 언제까지 같이 일하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이해가 갔다. 나는 앞으로의 일은 앞으로 걱정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니 지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반드시 끝내리라 하는 굳은 결의 대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거기가 어디인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아마 어떤 모습으로든 변해 있을 텐데 그 모습도 궁금하다고 했다.

막내인 H는 마음이 동요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묵상을 먼저 하고 있었던 P를 따라 묵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매일 정해진 구약과 신약 성경을 읽고 묵상 내용을 쓰고 기도문을 올리기 시작했다. 마태오 복음은 첫영성체 수업 때 공부한 것이라 익숙했다. 창세기와 시편은 두루뭉술하게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자세히 읽게 되어서 P와 H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두 자매 덕분에 오늘까지 길을 잃지 않고 오게 된 것 같다.

우리의 대화는 주로 직장에서의 묵상 내용이다. 주님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을 들락날락 하시는 것 같을 지라도 묵상은 우리의 얼굴을 변화시키는 중이다. 마음을 울리는 구절들에 빨간 줄을 그으면서 내 삶을 반추하고 있다. 밤마다 성경 읽는 모습에 아이들이 의젓해지는 것 같다. ‘또 다른 나’라는 뜻의 ‘나나’라는 별칭을 가진 남편이 나를 신기해한다. 요즈음 유혹 앞에서 하느님 뜻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도 ‘주성모’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기도드린다.

정영란(카타리나·대구 월성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