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바다를 가다 성지를 가다] 서해, 대전교구 갈매못순교성지

염지유 기자
입력일 2022-07-06 수정일 2022-07-06 발행일 2022-07-10 제 330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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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 마음으로 바다 바라보니 지친 일상에 감사의 단비가
다블뤼 주교 등 선교사 비롯한
무명 순교자들의 슬픔 서린 바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순교의 칼 받아들인 믿음 되새겨

갈매못순교성지에서 바라본 바다.

해수욕을 즐기고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서해 바다는 여름철마다 많은 피서객들로 북적인다. 서해를 갈 때, 꼭 들려볼 만한 성지를 소개한다. 충남 보령 갈매못순교성지(주임 황영준 시몬 신부, 이하 갈매못)다. 무성한 풀로 하늘을 가려 놓은 듯한 긴 초록 터널의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탁 트인 푸른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아름답게만 보이는 곳에서 1866년 병인박해 때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루카), 장주기(요셉) 다섯 성인이 순교했다.

바라보는 모든 곳이 순교 터

갈매못은 바라보는 곳마다 순교자들의 피가 서려 있는 곳이다. 군문효수형을 받은 다섯 성인의 머리가 떨어진 순교 터. 성인들의 머리가 장대 하나에 함께 엉켜 사흘간 효시됐다는 곳. 성인들의 유해가 처음 묻힌 자리까지.

이곳은 다섯 성인뿐 아니라 5백여 명의 무명 순교자가 목숨으로 신앙을 증거한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신앙선조들이 죽은 채로 또 산 채로 성지 앞에 광활하게 내다보이는 바다에 잠겼다. 모래사장과 바다가 모두 순교터였다.

성당을 향해 올라가는 언덕에는 십자가의 길이 펼쳐져 있다. 갈매못 십자가의 길 14처는 인간 예수의 고통을 우리가 어렴풋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형상으로 조성해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생하게 묵상하도록 이끈다. 성지 성당은 교우들이 형장을 숨어서 내려다봤다는 자리에 세워져 있다. 장총으로 무장한 수백의 군사가 둘러싸고 있는 형장에 다가가지 못해 소나무 숲에 몸을 숨기고 목자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던 교우들의 긴장을 표현한 제대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모래사장에 무릎 꿇고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성인들의 대열, 희광이가 첫 칼에 다블뤼 주교의 목을 반만 베니 사지가 뒤틀리는 경련을 일으켰다는 처참한 광경이 아른거린다. 굳은 신앙심으로 인간적 두려움을 이겨내며 차례를 기다리는 성인들과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목자처럼 순교하리라’ 다짐했을 수많은 무명 순교자를 기억하는 시간이다.

성당 앞에 있는 다섯 성인의 흉상. (왼쪽부터)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다블뤼 주교.

슬픔을 간직한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엾은 영혼들이 먼 나라에서 떼를 지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1843년 8월 2일 다블뤼 주교가 누나 수녀에게 쓴 편지 중)

다블뤼 주교는 목자 없는 양들을 돌보려는 사명감으로 먼 이국땅을 향해 떠나온 파란 눈의 사제였다. 교우들을 돌보며 왕성히 활동하던 다블뤼 주교가 체포되자 복사였던 황석두 성인도 “주교님과 함께 순교의 영광을 받겠다”며 따라나섰다. 피신해 있던 오메트르·위앵 신부도 무고한 교우들을 지키기 위해 자수했다. 배론 공동체 회장 장주기 성인도 제천에서 체포돼 서울에서 모두 함께 죽음을 기다렸다. 그러나 고종의 국혼을 앞두고 “서울 인근에서 피를 보는 것이 좋지 않다”는 무당의 말에 다섯 성인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갈매못에서 성금요일이었던 1866년 3월 30일에 순교했다. 복음의 씨앗이 되고자 바다를 건너온 사제들, 그들과 함께한 평신도들은 이 땅에서 수많은 신앙의 열매를 맺고 바다를 바라보며 고개를 떨궜다.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허명자作.

이곳은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지만 기쁨과 영광의 땅이기도 하다. 순교자들은 순교를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하늘로 들어 올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는 일로 여겼다. 다블뤼 주교가 남긴 말대로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였기에 성인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고, 기쁜 마음으로 칼을 받았다.

순교자들의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니 선조들의 피흘림으로 우리가 받아 누리고 있는 신앙의 자유, 신앙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그 감사한 마음이 지치는 일상에 메마르고 갈라져 가던 마음에 단비를 내린다.

‘갈매못’은 본래 ‘갈마연’(渴馬淵)으로 불렸다. ‘목마른 말에게 물을 먹이는 연못’. 그래서일까. 바다 앞에서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예수께서 영혼의 갈증을 느끼는 우리에게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요한 7,37) 하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주소: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천해안로 610

※미사시간: 화~일요일 오전 11시 30분

※문의: 041-932-1311

■ 성지 주변 가볼 만한 곳

성지 인근 대천해수욕장과 무창포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기며 무더위를 식힐 수 있다. 또 보령냉풍욕장에서 냉풍욕을 하며 한여름 더위를 물리치는 시간도 보내보자. 순례 후 여유롭게 걷고 싶다면, 지난달 개통한 ‘서해랑길’의 보령 62코스(15.9㎞)를 추천한다. 아름다운 서해 자연 경관과 바다를 따라 펼쳐지는 다양한 일몰 풍경을 볼 수 있다.

순례자들이 성지 순교성인비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