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로 판례’ 폐기, 교회 입장은?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2-07-05 수정일 2022-07-05 발행일 2022-07-10 제 3302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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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허용안 근거 사라져… 어떤 권리도 생명권 침해할 수 없다
美 대법원 ‘낙태금지 위헌’ 결론 내렸던 ‘로 대 웨이드’ 소송
최근 헌법이 낙태권 보장 않는다며 49년 만에 판례 뒤집어
임신 14주까지 낙태 허용하는 한국 정부안도 근거 잃게 돼

지난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이하 ‘로 판례’) 폐기 후 미국을 넘어 전 세계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도대체 ‘로 판례’가 무엇을 의미하기에 이토록 양보 없는 싸움이 이어지는지, 미국 법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아본다. 아울러 이와 관련해 교회의 시선과 대안을 모색해본다.

프로라이프 운동가들이 6월 24일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49년 만에 뒤집은 대법원 결정에 환호하고 있다. CNS

■ 미국 헌법이 보장한 낙태할 권리

1969년 미국 텍사스주의 노마 맥코비는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을 주장하며 낙태 수술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대부분 주에서 임산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불법으로 보고 처벌했다. 맥코비는 텍사스주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했고, 이때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인 로’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소송 피고인이었던 ‘헨리 웨이드’ 검사의 이름을 따 소송 명칭이 ‘로 대 웨이드’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 소송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으며, 1973년 ‘낙태금지는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미국 수정헌법 14조의 ‘적법 절차 조항’에서 사생활 권리를 끌어와 낙태 처벌이 이를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낙태할 권리가 헌법에 보장된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 판결로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각 주와 연방 법률들은 폐지됐다. 당시 해리 블랙번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삼분기 원칙을 밝혔다. 초기 제1삼분기에는 낙태에 정부가 관여할 수 없고, 제2삼분기에는 임부의 건강을 고려해 낙태 절차를 규제할 수 있으며, 최후 삼분기 동안에는 대부분 금지했다.

흥미로운 점은 성폭행으로 임신했다고 주장한 맥코비는 1997년 CNN과 인터뷰에서 이러한 사실이 위증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낙태권 소송에 참여한 것을 후회한다”면서 프로라이프 활동가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미 미국 사회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름으로 낙태가 권리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이후 대법원은 1992년 ‘가족계획협회 대 케이시’ 판례를 통해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기를 임신 24주로 보고, 24주 이후에는 여성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주 정부가 낙태에 개입할 수 있다는 새 기준을 마련했다. 하지만 태아를 생명으로 인정하는 시점과 과도한 부담의 정도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됐다.

■ ‘로 판례’ 폐기, 둘로 갈라진 세계

최근 판결된 ‘돕스 대 잭슨여성건강기구’ 사건 역시 미시시피주가 2018년 주 법으로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한 것에 반발한 시민단체 ‘잭슨여성건강기구’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진행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다수의견에서 알리토 대법관은 “헌법은 낙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어떠한 헌법 조항도 낙태할 권리를 암묵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며 낙태에 대한 결정권을 주 정부로 돌려보냈다. 반세기 만에 ‘로 판례’가 뒤집히며 미국에서 낙태는 더 이상 헌법으로 보장받는 권리가 아니게 된 것이다.

장기적으로 절반이 넘는 주가 낙태를 금지하거나 매우 강한 제한을 둘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생명운동가들은 환영했다. 미국 주교회의와 교황청립 생명학술원은 성명을 내고 ‘로 판례’ 폐기에 환영하면서도 더 본질적인 생명 우대정책 수립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진영의 목소리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기업이 원정 낙태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가세해 필리버스터 개정을 시사하는 등 이번 대법원 판결에 적극 대응할 것을 예고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등도 이번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정치적으로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립이 극에 치닫고 있다.

프로라이프변호사회 윤형한(야고보) 회장은 “이번 판결로 인해 낙태를 규제하는 쪽으로 분명 흐름이 바뀌었지만, 현재 미국과 전 세계 분위기를 보면 보수와 진보 진영의 정치적 싸움으로 번져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6월 24일 미네소타주 이건에 사는 한 소녀가 프로라이프 메시지가 적힌 사진을 들고 있다. CNS

■ 국내 영향은?

미국의 ‘로 판례’ 폐기가 우리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지난해부터 낙태죄 처벌 조항이 효력을 잃었지만, 개정안이 마련되지 않아 입법 공백 상황이 이어져 오고 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박정우(후고) 신부는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로 판례’를 모델로 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헌법불합치를 결정한 재판관 4인은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인 임신 22주 내외에 이르기 전까지는 임신의 유지 및 출산 여부를 여성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단순위헌 결정을 한 재판관 3인은 “임신 14주 무렵까지는 사유를 불문하고 임신한 여성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낙태가 허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50년 전 미국의 ‘로 판례’와 1992년 ‘케이시’ 판례를 골자로 한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정부안을 포함한 7개 법안이 발의됐다. 헌재 결정이 나온 이듬해 정부는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전면 허용, 이후 24주까지는 조건부 낙태를 허용한다는 개정안을 냈다. 박 신부는 “정부안도 ‘로 판례’를 모델로 했고, 이제 그 근거가 사라졌다”며 “수정 순간부터 생명으로 인정하는 교회는 주수에 상관없이 어떠한 낙태도 반대한다는 데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생명대행진 조직위원회 차희제(토마스) 위원장은 “‘로 판례’가 폐기됐다는 것은 태아의 생명권이 보장받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는 우리나라 입법에도 분명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태아의 생명권이 보호받는 상황으로 변경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이를 기조로 법안이 마련되고 실천적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 절대적 권리, 생명권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정치권을 비롯해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자는 입장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회는 생명권의 절대적 우선이라는 분명한 입장을 고수한다.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소장 박은호(그레고리오) 신부는 “모든 권리는 인간이 가진 생명권의 표현”이라며 “최근에 우리나라도 자기결정권이 마치 생명권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이어 “남성과 여성 간 불합리한 차이를 없애기 위한 차원에서 여성의 권리를 중요하게 다뤄야 하지만, 생명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은호 신부는 이를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성에 대한 책임감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아울러 미혼모·미혼부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비롯해 생명을 살리기 위한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여러 시설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무엇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명을 택한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