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있는 집 자식 / 이승훈 기자

이승훈 요셉 기자
입력일 2022-05-30 수정일 2022-05-31 발행일 2022-06-05 제 329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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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인 기자에게 나를 한국의 가톨릭신문 기자라 소개하자 반가워하며 ‘김수환 추기경’의 이름을 꺼냈다. 그 기자는 한국의 민주화를 높게 평가하면서 특히 “김 추기경이 있는 한국 가톨릭교회가 부럽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괜히 가슴이 펴지고 의기양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일본인이 ‘추기경’이 부러울 리는 만무했다. 우리나라에 추기경이 김 추기경 1명일 때 일본은 3명이나 있었다. 그럼에도 김 추기경이 있는 한국교회가 부럽다는 것은 김 추기경의 업적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생각에 닿으니 우쭐대는 마음이 가고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이웃나라 일본의 기자는 부러워할 정도로 김 추기경의 업적을 이해하는데, 그때 나는 김 추기경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내겐 그저 김 추기경은 당연히 있는 분이었다. 가진 것에 고마워할 줄 모르는 ‘있는 집 자식’이 바로 나로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내가 김 추기경이 있는 집 자식이었다는 것이다. 해외 어딜 가든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사라진 적이 없다. 김 추기경이 떠난 지 13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자랑스럽다. 하지만 김 추기경이 있는 한국교회를 살아본 적 없는 젊은 세대들은 어떨까.

우리만 ‘있는 집 자식’이 될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도 ‘있는 집 자식’이 돼야하지 않을까. 시복시성 운동은 김 추기경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일이다. 나아가 김 추기경이 없는 교회를 살아간 이들에게도 김 추기경이 ‘있는’ 교회를 살아가도록 해주는 일이다. 김 추기경의 정신을 실천하는 ‘있는 집 자식’이 많아진다면, 김 추기경의 시복시성도 앞당겨질 것이 분명하다.

이승훈 요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