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부족, 국민이 책임 묻는다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2-05-17 수정일 2022-05-17 발행일 2022-05-22 제 329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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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기본권과 생명권 침해로 소송
민간 에너지기업에게도 제기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이 지난 2월 16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정부와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기후소송이 쏟아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2000여 건 이상의 기후소송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미 여러 곳에서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만 5세 이하 ‘아기’들이 청구인으로 나서는 헌법소원 청구가 준비되고 있다. 아기들이 청구인이고 부모가 법정 대리인이 되어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아기 기후소송’이다.

소송 대상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 1항 “2030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 감축한다”는 규정이다. 소송 취지는 국가가 기후위기에서 국민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할 헌법상의 의무를 지니고 있지만, 이 규정은 그 의무를 수행하기에 불충분하며 특히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직접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탈핵법률가 모임 해바라기’ 소속 변호사들이 소송을 위임받아, 5월 31일까지 청구인을 모집해 헌법소원을 제기한다.

기후위기가 지구촌이 당면한 현실 문제로 인식되면서 정부와 기업에 책임을 묻는 기후소송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2015년은 전 세계 195개국이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1.5℃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합의한 해이다. 그해 6월 24일 역사상 처음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은 환경단체 ‘위르헨다’(Urgenda)와 시민 900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9년 12월 대법원을 거쳐 확정된 판결에 따라 정부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5% 감축해야 했다. 헤이그는 세계 2위 규모 초국적 석유회사 로열 더치 쉘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지구의 벗 네덜란드’(이하 ‘지구의 벗’)와 1만7000명의 시민, 6개 시민사회단체는 2018년 쉘을 상대로 탄소 배출 감축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3년이 지난 지난해 5월, 법원은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45% 감축할 것을 명령했다. 이 판결은 민간기업에 대해 기후위기 책임을 물은 첫 판결로 주목을 받았고,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에 대한 기후소송이 이어졌다.

지난해 3월 3일에는 프랑스에서 상징적인 기후소송 판결이 나왔다. 파리 행정법원은 옥스팜, 그린피스 등 4개 환경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미흡했던 책임으로 정부가 1유로의 배상금을 내라고 판결했다. ‘1유로 기후소송’은 230만 명의 프랑스인이 청원에 동참한 세기의 기후소송이었다. 정부에 기후변화 책임을 물은 판결은 2019년 네덜란드, 2020년 아일랜드에 이어 세 번째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도 2건의 기후소송이 제기됐다.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 19명의 청소년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가 기후위기의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서 충분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아,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기후위기가 전등을 끄고 물을 아끼는 등 개인적 실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므로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 등 큰 변화들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지난 2월 16일에는 ‘탄소중립기본법’ 역시 기후위기 대응에 불충분해 위헌이라며 추가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한국환경회의와 정의당 등 정당들이 같은 취지의 기후소송에 나섰다. 참여 단체들은 탄소중립기본법이 국민 생명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의 사례를 강조하고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대폭 상향할 것을 요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개인과 공동체 모두의 생태적 회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교황은 동시에 “우리는 기후변화에 관하여 차등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해야 한다”(「찬미받으소서」 52항)고 지적했다. 개인적 실천의 차원을 넘어서, 생태계 파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부와 기업의 책임에 대해 묻는 시민들이 많아지고 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