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성모님 얼굴에 보톡스 놔 드렸어요? / 정호철

정호철 대건 안드레아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
입력일 2022-05-10 수정일 2022-05-11 발행일 2022-05-15 제 329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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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마다 마당에서 성모님이 신자들을 반갑게 맞아주신다. 두 손을 모으신 루르드 성모님, 양팔을 벌려 환영해주시는 자비의 성모님, 아름다운 자태의 파티마 성모님 등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어머니를 볼 수 있다.

우연히 들른 어느 성당에서 성모상을 봤다. 안면이 유독 부어있고 잔금이 심하게 나 있어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성모님의 이마며 미간이 퉁퉁 부어올라 있고 눈 주변은 눈꺼풀이 심하게 처져 있었다. 무슨 연고인지 사무장에게 물었다.

“성모님 얼굴에 보톡스 놔 드렸어요?” 내 질문에 사무장이 박장대소했다. “아닙니다. 성당 벽 칠하면서 남은 페인트를 성모상에 칠을 한 건데 좀 두꺼웠나 보네요. 전에도 그렇게 해 드렸어요. 좀 붓긴 했는데 때가 타서 흉한 것보단 나은 것 같아서요. 예수 성심상도 피에타상도 다 함께 칠한걸요. 지난여름 하도 덥고 비도 안 오고 해서 성상들이 많이 벗겨지고 갈라져서 칠을 좀 두텁게 해 드린 겁니다. 본당 신부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시길래요.”

벽에 칠하는 페인트는 수성 페인트다. 물과 용해해서 쉽게 쓸 수 있다. 하지만 성상에 쓰는 페인트는 유성 페인트를 사용해야 한다. 수성 페인트를 성상에 칠하게 되면 유성계열 칠로 마감된 성상이 이를 밀어낸다. 그래서 칠은 갈라지고 성상은 부풀어 올라 흉해진다.

성상에 엉터리 페인트칠을 하는 현상은 전국적으로 비일비재하다. 솔직히 매우 부끄러운 현실이다. 성당에서 성물을 제작해 설치하고 축복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성상을 원형대로 깨끗하게 보존하고 손상된 성물을 제대로 복원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야외에 노출된 성모상은 비가 오면 비를, 눈이 오면 눈을 그대로 맞고 계신다.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성상들은 먼지에 오염되고 햇빛과 바람에 풍화돼 퇴색되고 갈라지며 흉해지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성상들은 석재로 된 것보다는 그보다 값이 싼 플라스틱 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좀 더 세심하게 관리하고 돌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성상들을 소홀히 관리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본당의 직무유기다. 신앙을 강조하고 기도를 독려하기 전에 본당에 설치된 성상들의 상태부터 점검해야 한다.

더럽고, 깨지고, 색이 바래고, 거미줄에, 새 분비물에 형편없이 방치된 성상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다. 더구나 천주교 공원묘원이나 공소 등에 가보면 정말 해도 너무한 상태로 방치된 성물들이 너무나 많다.

타 종교인들이 볼까봐 민망하기도 하다. 이웃 종교 불상은 금칠까지 돼 있다. 재료비도 비싸지만 그 정성이 갸륵할 지경이다. 벽에 칠하는 페인트와 성상에 칠할 페인트를 구분하는 정도의 안목은 가져야 한다. 우리의 성물에 대한 안이한 인식은 결국 우리 신앙을 스스로 하찮게 여기는 결과로 이어진다.

성모상과 예수상에 금칠을 하지는 못할망정 성당 외부 벽에 칠하고 남은 페인트칠을 성상에 덧칠하지 말기를 제발 부탁하고 싶다. 잘 모르면 전문가들과 상담하면 쉽게 해결될 사안이다. 성상 앞에서 정성스럽게 기도 바치는 교우들을 생각해 보톡스 효과 내는 엉터리 페인트칠을 이제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유럽의 화려한 성당까지는 아니어도 소박하고 깨끗한 성상들에서 품위를 담아내는 사목이 아쉽다. 신부님 본당 성모상은 보톡스랑 상관없으신지요?

정호철 대건 안드레아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