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청주교구장 퇴임하는 장봉훈 주교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4-19 수정일 2022-04-19 발행일 2022-04-24 제 3291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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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민과 함께한 23년, ‘야훼이레’ 하느님 체험한 시간”
교구민 목소리 경청하며 식별했던
시노드 여정 가장 기억에 남아
복음화 목표로 신자들과 함께하며
교구 성장과 도약 위한 기틀 마련

최양업 신부 시복 시성 위해
현양운동·기도에 더욱 힘 모았으면
성경 말씀 통해 하느님 만나고
미사 안에서 새 힘 찾을 수 있길

장봉훈 주교는 “교회 공동체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최양업 신부의 삶과 신앙에 있다”고 말한다.

‘주님의 뜻대로’

장봉훈(가브리엘) 주교가 23년 전 청주교구장으로 착좌하며 가슴에 새긴 이 말은 위기가 닥치고 앞이 보이지 않던 때마다, 쓰러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돼 줬다.

하느님이라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기에 물러서지 않고 청주교구를 위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던 장 주교는 교구장으로서 걸어온 시간을 회고하며 “참으로 기쁘고, 참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이제 ‘주님의 뜻대로’ 교구장직을 내려놓게 된 장 주교는 “교구 신부님들과 교구민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 교구민들과 걸어온 길

장 주교는 청주교구 출신 첫 교구장이다. 교구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장 주교는 교구에 알맞은 사목을 실천하고자 고민하고 노력했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돌아보며 장 주교의 머릿속에 남는 기억 중 하나는 2004년 열렸던 교구 시노드다. 복음화(선교), 사목(성직자), 가정(청소년)을 주제로 시노드 여정을 시작한 장 주교는 4년간 교구민들과 함께 나누고 경청하고 식별하는 시간을 보냈다.

장 주교는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2008년 시노드 폐막 미사를 통해 사목교서 「주님과 함께 ‘이웃으로 세계로’」를 반포했고, 이후 12년간 사목교서의 내용들을 실천해 왔다”고 설명했다. ‘교구 비전 2050’이란 이름으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2020년까지 교구 신자 20만 명 시대를 열고, 새 영세자와 주일 미사 참례자를 50% 늘리고, 쉬는 신자를 50% 줄인다는 내용이 골자다.

장 주교는 “쉽지 않은 목표에 도달하는 데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교구민들이 목표를 향해 함께 걸어갔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며 “12년의 여정을 통해 교구가 성장하고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구 시노드 개최 이후 지역 복음화를 위해 긴 여정을 쉬지 않고 걸어온 장 주교. 장 주교의 뚝심은 청주교구민들의 신앙을 더욱 단단히 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났다. 장 주교 착좌 전인 1998년 11만3290명(복음화율 8.3%)이었던 교세는 2021년 17만2761명(11.7%)을 기록, 50% 넘는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장 주교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교구민들과 오랜 시간 함께 걸어온 여정은 위기상황에서 힘을 잃지 않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며 “코로나19로 전국적으로 주일미사 참례자 수가 줄어들었는데, 청주교구는 4%정도로 다른 교구에 비해 비교적 낮은 하락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2014년 4월 11일 배티성지 ‘최양업 신부 박물관’ 축복식을 주례하고 있는 장봉훈 주교.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올바른 사제의 길 인도한 최양업 신부

배티성지 담당 신부를 맡기도 했던 장 주교에게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각별한 존재다.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장 주교는 재임기간 중 그 결실을 맺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하느님의 더 큰 뜻이 있다”는 믿음은 그가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해 다시 힘을 내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됐다.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2021년에 시복 소식을 듣기를 바랐으나 이뤄지지 않아 상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곧 하느님과 내 뜻이 다르고, 하느님은 더 크게 준비를 하고 계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었죠. 조선대목구 설정 200주년인 2031년을 바라보며 교구 신부님들과 교구민들이 최양업 신부님 현양운동과 기도에 더욱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1976년 진천본당 주임 때부터 이어진 최양업 신부와의 인연. 46년간 최양업 신부에 대해 공부하고 그의 삶과 신앙을 따르고자 했던 장 주교는 “교회 공동체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최양업 신부의 신앙과 삶에 있다”고 말했다.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박해의 위협 속에서도 전국 곳곳에 숨어 사는 신자들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던 최양업 신부. 장 주교는 “깊은 신앙심과 순교정신, 신자들에 대한 사랑을 새기고 길 위에 선 최양업 신부님을 통해 비대면으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하느님의 크신 사랑 기억하길

23년간 한 집에서 울고 웃으며 우여곡절을 함께한 교구민들은 장 주교에게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가족과 같은 교구민들과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며 장 주교는 두 가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우리 교구민들이 늘 말씀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걸으려면 그분에 대해 잘 알아야겠죠? 성경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깊은 사랑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2022년을 시작하며 장 주교는 ‘주일을 거룩히 지킵시다’를 주제로 사목교서를 발표했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는 그리스도교 생활의 토대이자 원천이기 때문이다. 장 주교는 “생활이 나아지면서 ‘주님의 날’이라는 주일의 의미가 퇴색되고 휴일 개념이 커졌다”며 “더욱이 코로나19로 인해 부득이하게 대면으로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정상적인 미사 재개가 됐을 때 우리 교구민들이 주일을 거룩히 지켰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어 “주일을 지키는 삶이 얼마나 기쁜지 알고, 미사를 통해 삶의 새로운 힘을 찾아낼 수 있는 신자들이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열심히 함께 해준 교구 신부님들과 신자들을 향해 “참으로 감사하다”고 말하는 장 주교. 교구장을 내려놓으며 그가 떠올린 하느님의 말씀은 ‘야훼이레’(창세기 22,14)다.

“교구장으로 보낸 23년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음을 체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며, 그분과 늘 함께하는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