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부활 특집] 코로나19를 넘어서는 희망

입력일 2022-04-13 수정일 2022-04-13 발행일 2022-04-17 제 3290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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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 새롭게 태어나는 주님 부활 대축일이다.

우리는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19라는 기나긴 ‘사순 시기’를 지내며 ‘엔데믹’을 기대하고 있다.

올해 주님 부활 대축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딛고 새 출발을 희망하는 우리 이웃들을 만났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희망을 통해, 현재 고통 속에 있는 이들도 고난과 역경을 넘어 기쁨의 새 시작을 할 수 있길 기도해본다.

벽화 작가로서의 꿈을 지닌 청년 구직자 염유빈씨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벽화 작가 꿈꾸는 청년 구직자 염유빈(안토니오)씨

“세상에 생동감 싹트게 하고 싶어”

염유빈(안토니오·30·광주대교구 순천 매곡동본당)씨는 7년 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벽화 작가’의 꿈을 품고 관련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미국으로 간 그는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며 역량을 쌓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염씨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현지 디자인 회사에서 경험도 쌓고 무난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염씨는 2020년 급히 귀국했다. 귀국 후 현재까지 염씨는 구직 상태이다.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자격증 취득과 이력서 작성 등에 시간을 쏟고 있다. 영어 유치원 체육 교사로도 근무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자신의 길은 벽화 작가라고 생각한 그는 다시 희망을 갖고 관련 업계에 원서를 내고 있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있지만 염씨는 지치지 않는다. 잘될 것이라는 긍정적 사고 덕이기도 하지만, 신앙이 큰 버팀목이 돼 주고 있어서다. 집을 구할 때도 성당이 근처에 있는지 확인한다는 염씨는 미국에서는 물론 지금도 꾸준히 미사에 참례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로 구직활동을 하며 이미 취직한 친구들과 비교돼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염씨는 본당 활동을 하며 안정감을 얻는다. 염씨는 “소속돼 있지 않으면 불안감이 큰데, 본당 활동을 하면 그 불안감을 이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벽화는 ‘힐링’(healing·치유)이라고 말하는 염씨는 앞으로도 꿈을 이루기 위해 걸어온 길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어두운 동네는 환하게, 팍팍한 분위기는 생동감이 싹트도록 벽화로 자신과 사람들에게 평온함을 선물하고 싶어서다.

그는 요즘 면접을 보고 있다며 곧 새 출발할 것 같다고 기대했다. 그는 “병아리도 부화하자마자 닭이 되진 않는다”면서 “유약한 병아리가 갈수록 닭으로 성장하듯이 나도 우리 사회도 이번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새로운 시작을 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

김진철 신부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기쁨 속에서 활기차고 재미나게, 하느님의 가르침을 간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 서울 영등포동본당 주임 김진철(루카) 신부

“‘다가가는 사목’으로 상황 대응”

서울대교구 김진철(루카) 신부는 2020년 2월 영등포동본당 주임에 임명됐다. 첫 본당 주임 발령이었다. 김 신부는 그해 2월 18일 처음 본당 신자들과 인사를 했는데, 다음날부터 본당 미사가 중단됐다.

김 신부는 2020년 4월 23일 미사 재개가 되기까지 2개월간을 “만남의 소중함을 깨달은 시간”이라 회상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사람을 만나는 소중함과, 사목자로서 만남을 통한 ‘친교’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사가 재개됐지만 사목 활동을 펼치기엔 여전히 힘들었다. 모든 소모임 활동이 중단된 데다 사목회 임원들이 교체되는 시기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김 신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가가는’ 사목을 펼쳤다.

사목회 임원 후보들을 일일이 찾아가 임원직 수락을 부탁하면서 사목회를 새롭게 구성했다. 본당 신자들의 신앙을 위해 음악과 함께하는 영성 프로그램을 준비해 다가갔다. 신자 약 10명씩을 모아 SNS 단체 채팅방을 만들고 매일 성경을 읽고 말씀을 공유하는 성경나눔방을 시작했다.

아픈 교우들에게도 다가갔다. 매달 초 본당 사무실에서 병자성사 사전 신청을 받은 뒤 직접 요양원, 병원 등을 방문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일 때는 방호복을 입고 병자성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20~30대 사회 초년생 직장인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 본당 청년회와 함께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김 신부는 이번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본당이 지역민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길 꿈꾸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이야 말로 교회가 지금 해야 할 역할이라고 김 신부는 생각한다. 김 신부는 “지난 2년과 다른 더욱 활기차고 사람 냄새 나는 교회가 되리라 믿는다”며 “본당 신자들과 함께, 지역민과 함께 즐겁고 재미있게 하느님의 가르침을 새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

수제돈가스 식당을 운영하는 이인옥씨는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정직한 맛을 지키며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 식당 운영하는 이인옥(베로니카)씨

“신앙 있기에 희망과 용기 찾았죠”

“아직도 많이 힘들지만 신앙 안에서 살며 희망을 찾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동에서 수제돈가스 식당을 운영하는 이인옥(베로니카·64·서울 구로3동본당)씨는 10여 년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지난 2년 동안 가장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희망을 잃은 적은 없다.

“3년 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새롭게 운영을 시작했는데, 1년 지나서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됐습니다. 2년간은 경제적 타격이 있었고 아직도 언제 회복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씨는 사업을 그만둘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자신보다는 직원들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씨는 상황이 좋아지리라는 희망과 용기, 그리고 정직한 맛을 지키며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이씨는 “저도 힘들지만 제 식당을 직장으로 삼아 일하는 직원들이 겪을 어려움이 떠올랐다”면서 “지금까지 견뎌온 만큼 조금 더 열심히 살아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씨의 정직과 성실성을 잘 아는 구로3동본당 교우들이 큰 힘이 돼 줬다. 교우들은 식당에 자주 들러 “역시 맛이 다르다”며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씨는 “손님들에게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힘이 난다”고 밝혔다.

신앙이 바탕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사업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혼인 교리교사와 본당 성가대로 봉사했고 지금은 본당에서 미사 해설을 하고 있는 이씨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 박승환(가브리엘·62)씨 역시 본당 성가대 단장과 구로문화원 꿈나무어린이도서관 관장으로 일하며 신앙 안에서 이 대표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고 있다. 이씨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갖는 사람이 참 신앙인이라는 생각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복직한 최세연씨가 4월 7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직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최세연씨 제공

■ 긴 휴직 겪었던 여행사 직원 최세연(체칠리아)씨

“막막했던 저를 위로하신 주님”

2020년 5월, 최세연(체칠리아·31·서울 새남터본당)씨는 갑자기 직장을 쉬게 됐다. 여행사 직원인 그는 코로나19로 여행업계가 심각한 타격을 입자 1년 6개월간 휴직해야만 했다. 처음엔 숨을 돌리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길어지는 휴직 기간에 최씨는 초조해졌다. 앞길이 막막했다.

성당 미사 참례까지 어려워지자 안개 속에 묻힌 것 같았다. 신앙심도 조금씩 옅어졌다. 원망스러운 상황에 하느님 탓도 했다. ‘하느님이 정말 계실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때 그의 이모가 조언했다. “이 시간이 주어진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걸 거야. 굳이 무언가 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막막한 쉼 속에 헤매던 최씨에게 그 말은 큰 위로가 됐고, 마음을 하느님께 되돌리는 나침반이 됐다.

특히 유튜브 채널 ‘하루 10분 기도’ 영상 시청과 가톨릭청년성서모임 봉사자 활동은 최씨가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성경 속 풍랑을 가라앉히신 예수님(마르 4,35-41)을 묵상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다. 최씨는 “풍랑 앞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운 모습을 보고 ‘왜 나는 예수님을 깨우려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며 “내 안에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다시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에 참례했다. 성서모임 그룹 나눔과 묵주기도를 하던 최씨는 지난해 11월 복직했고, 지금은 바빠진 업무에 기쁘게 일하고 있다.

“누구나 어려운 순간이 있고, 어려움이 몰려올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죠. 하지만 굳이 무언가 하려 하지 말고 흘러가는 그 시간을 그대로 느끼면 좋겠어요. 하느님께서 분명 그 시간을 주신 이유가 있으시고, 그분은 항상 함께하시니까요. 돌풍이 치는 바다 한가운데에 주무시고 계신 주님을 기도로 깨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지면 좋겠어요.”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

인주연씨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축제’와 같은 부활을 맞길 바란다”고 말한다.

■ 감염 대응 맡았던 공무원 인주연(스텔라)씨

“과도한 업무 속 ‘하느님 뜻’ 묵상”

인주연(스텔라·30·서울 신대방동본당)씨는 2019년 보건직 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해 올해 3년째 근무 중이다. 그는 본당에서 청년 전례단 일원으로 매월 서울 보라매병원 원목실 미사 전례 봉사를 하면서 보건직 공무원을 꿈꿨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들이 어려운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신앙인의 모습과 닮아보였기 때문이다.

인씨가 새내기 공무원으로 일을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2월이었다. 서울의 한 보건소 건강증진팀에서 일하던 인씨는 1년 6개월가량 재난안전방역대책본부 감염대응팀에 투입됐다. 그는 자가격리자 관리 업무를 맡아 확진자의 접촉자를 파악하고, 자가격리 통보, 건강상태 확인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잠잠해질 줄 모르고 심해지면서 인씨는 연속 3~4주를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한 적도 있다. 과도한 업무로 무기력증을 겪었다. 그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2015년부터 봉사했던 서울대교구 청년국 청년부 전례연구팀 팀원들의 위로와 자신이 활동하는 ‘예수님의 작은 벗’이라는 청년 모임은 위기를 이겨내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코로나19가 스스로를 성숙하게 만들었다”며 “하느님께서 ‘왜 이러실까’라는 마음보단 ‘이 시기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려 하시는 것일까’를 스스로 돌아보게 됐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인씨는 현재 처음 공무원 일을 시작했던 건강증진팀에서 다시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다. 보건 공무원으로서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조치와 지원을 살피고 개발하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위기이든 끝은 있기 마련”이라며 “위기의 끝에서 새로운 희망을 맞이하고, 희망 속에서 얼굴을 마주보는 ‘축제’와 같은 주님 부활 대축일이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

김용성씨는 “이제야 조금씩 나아지는 기미가 보인다”며 “이런 작은 희망을 간직할 수 있다는 자체로도 감사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 어려운 이 돕는 보험설계사 김용성(요한 사도)씨

“희망 지키는 것이 부활 사는 삶”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17년째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김용성(요한 사도·54·서울 이태원본당)씨는 최근 2년이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험설계사는 고객과 만나 구체적으로 설명도 해야 하고 고객이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 바로 답도 해줘야 한다. 하지만 비대면으로 소통하기엔 너무 많은 한계가 있었다. 김씨는 “코로나19 발생 후에는 직원 3분의 1이 그만뒀다”고 밝혔다. 거기다 보험설계사는 특수사업자로 분류돼 정부지원금 받기도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김씨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며 “그나마 기존 고객들과 주변 이웃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에게는 오랫동안 이어온 신앙이 있었다. 20살부터 27년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던 그는 코로나19 발생 후에도 단 한 번도 주일미사를 거르지 않았다. 김씨는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때가 있다는 믿음으로 묵묵히 미사에 참례했다”고 말했다.

특히 보험업을 하며 몸이 아프거나 사연이 딱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그는 “건강을 주신 것만으로 은총이라 생각한다”며 “최대한 베풀면서 살고자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수중에 돈이 있든 없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꾸준히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또 사단법인 용산구 소기업소상공인회 사무국장을 맡으며 소상공인들과 함께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있다.

그는 “이제 조금씩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며 “가족들과 편하게 식사 한 끼 할 수 있는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고 말했다. “아직도 현실은 사순 시기를 겪고 있지만, 그런 희망을 간직한다는 자체가 부활을 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족과 이웃들이 환하게 다시 웃을 수 있는 날을 희망하며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려 합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