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주님 부활 대축일 - 살아계신 예수는 주님이시다

박용욱 미카엘 신부 (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
입력일 2022-04-12 수정일 2022-04-12 발행일 2022-04-17 제 3290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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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사도 10,34ㄱ.37ㄴ-43 / 제2독서  콜로 3,1-4 / 복음  요한 20,1-9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 아닌
오늘 우리에게 살아계신 분으로 체험돼야

우리 일상은 부활의 희망으로 의미를 얻고
죽음을 넘어서는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되는 것

부활하신 예수님 체험하고 따랐던 제자들처럼
주님의 삶과 죽음의 방식을 기쁘게 따라가길

서른아홉 살 젊은 엄마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부부는 남아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추억거리를 하나라도 더 만들겠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환자답지 않게 쾌활한 얼굴로 먹고 싶었던 음식을 사달라 해서 식당에 앉았는데, 속이야기를 꺼냅니다. 간간이 휴대용 호흡기를 찾으며 이어가는 말은, 죽음이 너무 두렵고 남편과 어린 딸을 남겨 두고 가는 길이 너무 불안하다는 것이었지요.

수많은 임종을 지켜본 사제로서 대답했습니다. “자매님, 결코 마지막이 아닙니다. 엄마 뱃속의 태아는 자궁 밖으로 나가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아도, 뱃속에서 나와 탯줄을 끊는 순간 또 다른 삶으로 나갑니다. 산모와 태아 사이에 본능적인 사랑과 애착이 있겠지만, 참사랑은 아기가 세상으로 나와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함께 터득하고 완성시켜 가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도 그렇게 삶의 다음 단계,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다시 만날 것이고, 그때는 더 이상 헤어짐도 아픔도 없을 겁니다.”

며칠 후에 젊은 아내요 엄마가 가족들과 아름답게 인사를 나누고 평안히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가 삶의 끈을 불시에 끊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인간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합니다. 부활은 우리 일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죽음이 우리 삶에 언제나 동반하는 것처럼, 부활의 희망도 우리 삶의 시간을 동반하면서 죽음을 넘어서는 위로와 격려를 부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부활을 경축하면서 우리 일상이 부활의 희망으로 의미를 얻게 된다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부활을 먼 옛날 일어났던 한 사건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사건의 과학적 증거를 찾기 위해서 여태 애쓰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도 간혹 사망진단을 받았다가 소생하는 경우가 생기는데(라자루스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복음서는 그런 식의 소생 소식을 전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에서 찾은 것은 그분의 얼굴을 쌌던 수건과 아마포뿐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과거에 한 번 있었던 시신의 변화 그 이상의 것으로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 체험은 주로 “예수님께서 살아계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다”라는 형태로 성경에 기록됩니다.

암브로시오 베르고네 ‘부활하신 예수님’.

복음서를 포함한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우선 “예수님은 살아계시다”는 고백으로 전해집니다. 오늘 첫째 독서는 다양한 부활체험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사도 10,41). 예수님께서는 문이 닫힌 집에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요한 20,19), 엠마오로 가는 제자 둘에게 낯선 사람으로 나타나셨다가 홀연히 사라지기도 하셨습니다.(루카 24,13-35) 마리아 막달레나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지요.(요한 20,14)

심지어 바오로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은 그분께서 승천하고 한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만지고 음식을 나눌 수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오시는가 하면, 상상하기 힘든 환상 같은 형태로 오기도 하셨습니다. 요컨대 예수님은 언젠가 일어났던 신기한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라, 제자들의 삶 속에서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살아계신 분으로 체험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부활 대축일 낮미사 본기도는 “오늘 외아드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주셨으니”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부활은 오늘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그분이 주님이시라고 전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제자들에게 그분은 그저 신기하게 되살아나신 분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남달리 장수를 누리거나, 죽었다가 소생한 예가 없지 않습니다. 가까이 2014년에도 심폐소생술이 실패해서 영안실까지 내려갔다가 소생한 예가 부산에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생한 이를 주님이라 모시고 섬긴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육신의 소생 이상을 체험했다는 뜻입니다. 제1독서는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사도 10,38)고,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사도 10,40)으며,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사도 10,42)하셨음을 선포합니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고백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처형한 제국의 지배를 포함해서 세상의 모든 지배, 모든 권력보다 위에 계시며, 그분이야말로 이 세상을 주관하는 가장 높으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신”(사도 10,38) 예수님을 따라 그 길을 함께 걸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분을 체험하면서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그분의 삶과 죽음의 방식을 따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입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주님 외에 다른 어느 누구도, 어느 것도 앞세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도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 3,1-2) 그런 점에서 오늘 부활을 체험하고 기쁨을 온전히 누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의 주님,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땅에 매이지 않고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는’ 제자들에게 오늘은 정녕 기쁘고 또 기쁜 날이 될 것입니다.

박용욱 미카엘 신부 (대구대교구 사목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