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1. 윤공희 대주교

정리 남재성 기자
입력일 2022-03-23 수정일 2022-05-16 발행일 2022-03-27 제 3287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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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100년과 함께 울고 웃었던 목자의 길
여러 교구 사목 이끈 최고령 주교
6·25 전쟁 발발 3개월 전 사제수품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에 동반하며
한국가톨릭교회 눈부신 성장 견인

지난 2월 25일 광주가톨릭대학교 주교관에서 윤공희 대주교가 구술 인터뷰에 답하며 웃고 있다. 사진 박원희 기자

가톨릭신문이 창간 95주년을 맞아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기획을 선보입니다.

가톨릭신문은 지난 2000년 대희년, 새 세기를 시작하며 ‘은퇴 사제의 삶과 신앙’이라는 부제를 붙인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기획 연재를 3년여간 독자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렸습니다. 한평생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아 양떼를 돌보는 목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이들, 사목현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여전히 각자의 삶터 곳곳에서 원로 사목자로서 헌신하고 있는 이들의 삶은 우리들에게도 큰 울림을 남겼었습니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이른바 다시 태어나도 사제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곤 하셨습니다.

많은 독자들의 요청에 힘입어 가톨릭신문은 이 기획 연재의 시즌2를 선보입니다. 특별히 이번 기획은 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의 삶과 신앙 속으로 들어가는 장으로 구성했습니다. 쉽지만은 않은 목자의 길, 고단함이 더 컸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제로서의 삶은 은총이고 선물이고 기쁨이라고 말하는 이들.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이라고 말하는 원로 주교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그들이 풀어내는 삶과 신앙 이야기가, 우리의 영성적 빈곤을 채워주는 또 다른 거름이 되길 기대합니다.

1950년 3월 20일 윤공희 대주교(우측) 사제수품 기념사진.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첫 주인공은 윤공희 대주교(빅토리노·98·전 광주대교구장)입니다.

윤공희 대주교님께선 광주대교구장, 수원교구장을 비롯해 서울대교구장 서리를 맡은 경험도 있습니다. 3개 교구의 교구장 역할을 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1924년에 태어나셨으니 내후년이면 만 나이도 세 자리 숫자가 됩니다. 대주교님께서 직접 만나거나 모신 역대 교황님만 해도 비오 12세, 성 요한 23세, 성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 성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님 등 7명이나 되는데요.

1950년 3월,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3개월 전 사제품을 받으셨으니, 몇 년째 사제이자 주교로 살고 계시는 건지 머릿속은 산수 계산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 구술을 해주실 상황이 되시는지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하도’ 하신 일이 많고 겪으신 일들은 더 많기에 본격적인 구술을 받기 전 참고한 자료만도 조금 과장해서 산더미 같았습니다.

많은 신자분들이 한국인 신부님보다 외국인 선교사제들이 더욱 많았던 그 시절, 어떻게 가톨릭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어떤 동기로 사제가 되었는지 궁금해 하셨습니다. 한국사와 한국교회사 한 세기의 시간을 함께 보내신 목자. 일제침략기에 이어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국전쟁과 분단, 산업의 근대화와 한국 민주주의 발전 등의 시기를 살아오신 분. 한국가톨릭교회의 눈부신 성장의 길을 함께 이끌어오신 분. 한국 근·현대사의 명암은 어떻게 기억하고 또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해 하셨습니다.

윤 대주교님께선 현재 한국교회 최고령 주교님이십니다. 영육간 건강! 이것은 윤 대주교님께서 받으신 큰 선물인 듯 합니다. 기억력은 그 누구보다 좋으십니다. 그동안의 사목 여정들을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 아닐까요.

구술의 시작은 ‘평양냉면’이었습니다. 평소 가리는 것 없이 잘 잡수시지만, 가끔 고향 음식인 평양냉면이 생각난다며 웃으시는 모습. 그 눈웃음에서 ‘당연히 신부님이 돼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던 총명한 어린 소년의 미소가 묻어났습니다. 후배 사제들을 양성하고 있는 광주가톨릭대학교 내 주교관에서 생활하시는 모습에서 대주교님께서 성소를 키운 북한땅 덕원신학교 시절 모습 또한 연상됐습니다. 그 시절의 이야기, 다음 주부터 시작됩니다.

정리 남재성 기자 namj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