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화마가 휩쓴 자리, 울진군을 가다

이나영 기자
입력일 2022-03-16 수정일 2022-03-17 발행일 2022-03-20 제 3286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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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앗아간 불…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4일 발생… 역대 최대 피해 남긴 산불
안동교구 울진·북면 신자들 피해 심각
보금자리와 일터 사라져 앞날 ‘막막’

울진본당 죽변공소 이영애씨의 집. 3월 4일 발생한 산불로 삼대가 살던 집이 전소됐다. 사진 박원희 기자

타들어갔다. 3월 4일 울진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울진·삼척지역 2만923㏊가 타들어갔다. 40여 년 비바람을 막아주던 집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사업장도 불길에 휩싸였다.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불씨에 사람들은 무력했다. 발을 동동 구르다 몸만 피했다. 불길에 무너져버린 지붕과 앙상한 뼈대만 남은 생활터전. 그곳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 역시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 10일, 화마가 휩쓸고 간 울진군을 찾았다.

집이 사라졌다

“여기가 우리집이었나 싶어요. 아직도 실감 안 나죠….”

안동교구 울진본당(주임 최상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죽변공소 이영애(엘리사벳·60)씨는 화마로 집을 잃었다. 40여 년 전, 시어머니 홍분란(안나·92)씨가 먼저 터를 잡은 곳이었다. 결혼 후 타지에 살다가 시어머니가 계시는 곳 바로 앞에 집을 지어 올린 것이 2001년. 그곳에서 남매를 키워내고 어머니를 돌보며 지냈다. 삼대가 오순도순 모여 살았다.

4일 정오 즈음, 마을 방송이 나왔다. 산불이 번지고 있어 위험하니 모두 마을회관으로 대피하라는 내용이었다. 올해 92세인 시어머니를 먼저 대피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이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마을회관으로 이동했다. ‘내일 다시 와야지’ 생각하며, 통장과 지갑, 핸드폰만 들고 움직였다. 5일 새벽, 집을 지킨다던 남편 장상봉(62)씨에게서 사진이 전송되어져 왔다. 사진 속 집은 낯설었다. 가족이 살던 집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루 만에 일어난 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5일 정오가 지나서 이씨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 모두 타버렸다”는 남편의 말은, 기가 막히게도 사실이었다. 정말 아무 것도 남은 것 없이, 모조리 다 타버린 집 앞에서 이씨는 할 말을 잃었다.

“너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눈물도 안나오더라고요.”

시어머니가 생의 절반을 보낸 곳. 이씨 집 뒤편으로 위치한 시어머니의 집은 불에 휩싸여 주저앉아 버렸다. 땅 위를 덮고 있는 지붕만이, 이곳이 집이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시어머니에게도 사실을 이야기해야 했다. 충격을 받으실까 염려하며 조심스레 알렸다. 시어머니는 이씨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살라믄, 정신 단디 차려야 한다. 밥 잘 챙겨묵고….”

마을회관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돌아갈 보금자리가, 이제는 없다.

뼈대만 남은 이영애씨의 집 현관에 ‘교우의 집’임을 알리는 십자가가 타다만 채 남아있다. 사진 박원희 기자

생계가 막막

안동교구 울진군 북면본당(주임 김도겸 아론 신부) 전시몬(시몬)씨는 이번 화재로 생계가 막막해졌다. 전씨는 원자력발전소와 건설 현장 등에 부품을 납품하는 일을 해 왔다. 빚을 내 부품을 미리 구매한 후 창고에 비축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배송을 다녔다. 창고는 울진군 신화2리에 있었다. 마을 주택 20여 채가 전소된 곳. 전씨는 부품 배송 중 마을이 불길에 휩싸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창고를 찾은 것은 5일 오후. 창고는 전소됐다. 빚이지만 전재산이었던 전씨의 부품들도 모두 녹아버렸다.

전씨의 아내 장송희(체칠리아)씨는 4월 셋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 월세로 지내면서 미래를 꿈꿨던 부부는 이제 9살 첫째(대건 안드레아), 5살 둘째(알로이시아) 아이를 앞에 두고도 마주 웃기가 버겁다. 전씨는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애들을 키워야 한다, 뭐든 해야 한다…, 그 생각만 합니다.”

보상절차를 알아봤지만 “어렵겠다”는 답을 들었다. 마을 창고를 임대해 사용하던 상황. 전소된 마을 창고는 보상 대상이지만, 그곳에 비축돼있던 부품까지는 보상이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울진본당 원용대(베로)·강정아(베로니카)씨 부부도 피해를 입었다. 17년을 이곳에 살았지만, 산불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라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원씨 부부는 폐차장을 운영하며, 폐차장 옆 건물에 보금자리를 꾸리고 살았다. 바쁜 일상에도 본당 활동을 우선에 두고 지냈다. 남편은 민족화해위원회 부장으로, 아내는 재정부장으로 봉사하며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다.

5일 낮, 집 뒷산에서 연기가 보였다. 원씨는 아내 강씨를 산에서 떨어진 지인 집으로 보내고, 사업장을 지켰다.

“그런 건 처음 봤어요. 저쪽 산에서 도로를 넘어 불덩이가 날아오더라고요.”

가족 생계가 이곳 사업장에 달려있었다. 원씨는 화마에 맞섰다. 소화기를 사오고 호스로 물을 뿌리며 번져가는 불길을 잡으려 애썼다. 원씨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불길은 번져갔고 주변에 산적한 가스통과 산소통이 터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진화에 매달리던 원씨가 달아나듯 폐차장을 떠난 건 오후 6시경. “제발, 제발” 기도만 하며 밤을 지샜고, 다음날 다시 찾은 폐차장은 거대한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140여 대 차량과 1억여 원 압축기 등이 모조리 불탔다.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폐차장 바로 옆 원씨의 집은 무사했다. 수도와 가스가 끊긴 상태여서 생활은 불가능했지만, 가재도구는 온전했다. 울진본당 주임 최상희 신부는 이들 부부를 본당으로 맞아들였다. 본당 식당으로 사용하던 ‘나눔의 집’에 머물게 하고, 그들의 생활을 보살피고 있다.

원씨의 폐차장과 집은 군유지(군 소유의 토지)에 위치해 있다. 수도·가스를 다시 연결할 수 있을지, 폐차장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등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생계를 책임지던 폐차장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은 원용대씨가 화재 상황에 대해 설명하다 고개를 떨구고 있다. 사진 박원희 기자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울진본당 빈첸시오회 회원과 신자 10여 명은 5일 새벽 4시 30분 성당에 모였다. 잔불이 모두 진화되지 않아 위험한 상황. 그 길을 뚫고 모인 신자들은 2시간여 동안 200인분의 주먹밥을 만들어 울진 재난지원본부에 전달했다. 산불 발생 초기, 구호물자도 전달되기 이전이었던 시기에 주먹밥은 소방대원들의 소중한 끼니가 됐다.

집이 전소된 이영애씨의 딸 장유미(28)씨는 회사에 3일간 연차를 냈다. “우리집은 못 구했지만, 다른 집도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 없다”며 지인들과 트럭에 물을 실었다. 하루 종일 마을 주변을 다니며 잔불을 끄고, 새벽녘에 돌아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이영애씨는 마을회관에 모인 어르신들을 위해 배식봉사를 하고 있다. 80~90대 어르신 30여 명의 식사를 챙기다보면 하루가 금방 흘렀다. 이씨는 “혼자 있었으면 이 상황을 못 버텼을 것 같다”며 “가족과 이웃이 있기에 서로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폐차장이 전소된 강정아씨는 “그래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담담히 말했다. “앞날은 막막하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식사시간이 되면 강씨의 전화가 울린다. 함께 밥을 먹자는 이웃 신자들의 전화다. 강씨는 “이웃들 덕분에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면서 “다 지나가고 웃을 날이 올 거라 생각하고,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성금 계좌 농협 301-0307-1905-31 예금주 (재)천주교안동교구유지재단

울진본당 최상희 신부(맨 오른쪽)와 죽변공소 서영진 회장(왼쪽 두 번째), 이영애씨(최 신부 왼쪽) 가족의 모습. 사진 박원희 기자

3월 4일 발생한 산불로 인해 집이 타고 있는 모습. 경상북도 제공

이나영 기자 la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