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서울 ‘동자동 사랑방’ 대표 윤용주씨

이재훈 기자
입력일 2022-03-07 수정일 2022-03-08 발행일 2022-03-13 제 3285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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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에서 쪽방 주민 돌보는 천사로”
알코올 중독·당뇨 합병증으로
두 다리 잃어 지체장애 1급
하느님 알게 돼 새 삶 찾은 뒤
더 낮은 이들 위해 손 내밀어
화가로서 재능 살린 봉사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동자동 쪽방촌 거리에서 한 주민의 안부를 묻고 있는 윤용주(오른쪽)씨. 동자동 사랑방 제공

“하느님을 알고 새 삶을 찾은 제가 고민 끝에 얻은 답은 ‘더 낮은 이를 위해 손을 내밀라’는 가르침의 실천이었습니다.”

서울 동자동 쪽방촌. 한 평 남짓한 크기의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한 건물에 평균 50~60명이 거주하지만, 욕실과 화장실은 층마다 공용으로 하나 정도를 갖춘 열악한 환경이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에는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곳 주민 1000여 명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인데다가 각종 질환을 안고 있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들이 주로 치료를 받던 공공 병원들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최소한의 돌봄마저 받기 어렵게 됐다.

윤용주(요한 사도·60·서울 후암동본당)씨는 이렇게 취약한 상황에 놓인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모습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한다. 그래서 2014년부터 동자동 쪽방촌 주민 자활을 돕는 ‘동자동 사랑방’ 봉사에 헌신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동자동 사랑방’ 대표직도 맡아 거주 공간이 시급한 노숙인을 위한 긴급 월세 지원, 도시락 나눔, 법률 안내 등을 돕고 있다.

윤용주씨는 “두 다리를 하느님께서 거둬가셨기에 신앙을 알았고, 사랑으로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윤씨는 8년 전 당뇨 합병증으로 양 무릎 아래를 모두 절단한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다. 화가로서의 삶까지 접고 시작했던 사업이 IMF 여파로 파산한 이후 근근이 이어가던 일용직마저 끊기자 술에 빠져 지냈다. 급기야 노숙생활을 전전하다 그때 얻은 병으로 다리까지 잃게 됐다.

그러다 2014년 세례를 받으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수술을 위해 입원한 국립의료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기도해주던 한 수녀를 만난 것이 계기였다. 그 수녀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고 윤씨는 주저 없이 하느님을 선택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바로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었다.

쪽방촌 주민들 간 다툼을 중재하고, 거주에 어려움을 겪는 주민이 있으면 언제든 먼저 나서서 돕는다. 주민들이 더욱 가난한 이웃들을 돕는데 쓸 수 있도록 공동 긴급 구호 통장을 만드는 데에도 주축이 됐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바쁜 주민들이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게 하는 데에도 힘이 돼줬다. 덕분에 주민들은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재단법인 바보의나눔과 꽃동네에 후원금도 낸다.

서울 후암동성당에는 ‘산하’(山河)라는 제목의 작은 수묵화 한 점이 걸려 있다. 술을 끊고 화가로서의 재능도 되살리고자 힘쓴 윤씨가 2017년 제2회 국제장애인미술대전에서 특선을 받은 작품이다. 윤씨는 자신이 화가로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본당 신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이 뜻깊은 작품을 기증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지친 신자들을 위해 ‘꽃이 피다’를 주제로 한 전시회도 계획 중이다.

“하느님께서 두 다리를 거둬간 건, 제게 신앙을 알았을 때 얻을 수 있는 기쁨을 주시고 당신 자녀로 새롭게 쓰고자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매 순간 주님의 이끄심을 알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이재훈 기자 steelheart@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