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우리 신부님 / 함상혁 신부

함상혁 프란치스코 신부 (수원교구 공도본당 주임)
입력일 2022-01-25 수정일 2022-01-25 발행일 2022-01-30 제 328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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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미사가 끝나고 청년들과 함께 짬뽕을 먹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걸 시켜야 하나 메뉴판을 보는데 이름이 무시무시합니다. 지옥불짬뽕!입니다. 글자도 빨간색입니다. 단계가 4단계까지 있는데 1단계가 제일 순하고 4단계는 아주 매운 맛입니다. 1단계를 시킬까 하다가 그것도 매울 것 같아 보통 짬뽕을 시켜서 먹고 온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매운맛에도 단계가 있는 것처럼 신부도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느낄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단계는 지식의 차이나 성품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에 따른 단계입니다. 오랜 기간 사목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신부들에게는 3단계가 있지 않나 느낄 때가 있습니다.

호칭에 따라 구분이 되는데 중간단계는 ‘신부님’입니다. 80%정도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여기서 신부님이라는 호칭은 보통명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당신부님도 신부님, 내가 아는 신부님도 신부님, 평화방송에서 본 신부님도 신부님입니다. 신부님의 아랫 단계는 ‘신부’입니다. “신부님, 제가 ○○○ 신부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 신부 있을 때 저희 너무 힘들었어요.”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당한(?) 것이 있어 마음의 앙금이 있거나 좀 안 좋게 생각할 때 신부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신부님의 윗 단계, 제일 듣기 좋은 호칭은 ‘우리 신부님’입니다. 강론을 잘하거나 일을 잘해서 우리 신부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와 특별히 가까운 신부님, 내가 좋아하는 신부님, 우리 본당에 있는 신부님, 좋은 신부님, 착한 신부님만이 우리 신부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3단계에는 승격제도가 있는지 ‘신부님’이 ‘우리 신부님’이 되기도 하고 ‘우리 신부님’이었다가 그냥 ‘신부님’으로 강등되기도 합니다. 새로운 본당에 가게 되면 그냥 신부님입니다. ‘우리 신부님’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년 정도인 것 같습니다. 1년은 지나야 신자들을 잘 알게 되고 여러 추억을 만들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저도 본당에 온 지가 3년을 향해 갑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아직 ‘신부님’과 ‘우리 신부님’의 중간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 신부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요? 복음에 나오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크게 슬퍼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호칭에 눈길이 갔습니다. 저의 주님이라고 예수님을 부릅니다. 복음의 다른 부분을 보면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이렇게 부릅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이 율법학자에게 예수님은 제3자인 것입니다. 반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냥 주님도 아니고 ‘저의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일곱 마귀에게 시달리던 막달레나는 예수님 덕분에 해방되고 구원받은 인물입니다. 그렇게 큰 사랑을 받았으니 ‘저의 주님’이라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우리 신부님’이 될 수 있을까요? 요한1서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1요한 4,19) 더 이상 뜸들이지 말고 제가 먼저 신자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신부님’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함상혁 프란치스코 신부 (수원교구 공도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