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마음이 헷갈린 백성 / 박천조

박천조 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2-01-18 수정일 2022-01-18 발행일 2022-01-23 제 327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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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어느 신부님의 권언에 따라 성무일도를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무일도를 하다 보니 초대송의 글귀가 눈앞에 계속 어른거립니다. “사십 년 동안 그 세대에 싫증이 나버려 나는 말하였었노라. 마음이 헷갈린 백성이로다. 내 도를 깨치지 못하였도다. 이에 분이 치밀어 맹세코 말하였노라. 이들은 내 안식에 들지 못하리라.”

문득 오늘날 우리가 헷갈려 하고 있는 것들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헷갈림 중의 하나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잘못 바라보고 분쟁의 한 가운데로 개입하는 과정에서 종종 나타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합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는 여러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그리고 그 강요에 따라 평화라는 화두를 놓치고서는 헷갈려 할 때 주님의 안식에 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2019년 미국은 유엔사령부 전력제공국의 확대를 위해 전력제공절차 지침을 사전협의 없이 새로 작성해 우리 국방부에 일방 통보해 왔다고 합니다. 그 지침은 유엔사 전력제공국을 6ㆍ25전쟁 참전국에서 유엔 회원국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었고 지침대로라면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도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국제법과 헌법에도 외국군대의 주둔에는 해당 영토국가 국회의 동의가 전제돼야 하고 정전협정에도 미군 외 추가 주둔은 못하게 돼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수용불가 입장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새 지침에 따라 6ㆍ25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국가의 장교가 우리의 동의 없이 무단 입국함에 따라 사실상 추방해 복귀시켰다고도 합니다.

한편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전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 최근 “왜 한국이 기여하지 않아야 하는가”라고 반문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의 이익과는 달리 갈등의 한 가운데로 점차 끌려 들어가는 형국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환경 속에서 우리는 종종 우선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헷갈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강대국 간의 갈등 속에서 우리의 처신은 어찌해야 할지 말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는 것은 얼핏 명쾌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평화라는 가치와 전면 배치되는 잘못된 판단일 수 있습니다. 정작 우리가 헷갈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 평화에 기여하는 것인가’라고 하는 방향성일 것입니다.

박천조 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