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남아공 인권 운동 상징’ 성공회 투투 대주교 선종

입력일 2022-01-04 수정일 2022-01-04 발행일 2022-01-09 제 3277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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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색인종 차별 정책에 저항
1984년 노벨평화상 수상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2017년 10월 7일 생일을 축하해 주는 군중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 CNS 자료사진

【외신종합】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인권 운동 ‘아파르트헤이트’의 상징이자 198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성공회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지난해 12월 26일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투투 대주교의 장례미사는 1월 2일 그가 생전 흑인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펼쳤던 케이프타운의 성 그레고리오 성공회 대성당에서 거행됐으며, 유해는 성당 중앙제단 앞 추모석 아래 유골함에 봉안됐다. 이날 장례미사는 그가 평소 당부했던 대로 부인 레아 투투 여사를 비롯한 가족 20여 명이 참례한 가운데 소박하게 진행됐다.

투투 대주교의 유해는 저렴한 소나무관에 안치한 뒤, 화장보다 더 친환경적인 수 분해장(알칼리 가수분해)을 통해 뼈만 남긴 뒤 이를 분쇄하는 방식으로 안장됐다.

투투 대주교는 1931년 10월 7일 요하네스버그 인근에서 태어나 30세에 성공회 사제가 됐고, 1986년 대주교에 임명됐다.

그는 20세기 최악의 정치적 억압으로 꼽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정권의 흑인 인종차별에 맞선 인물로,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8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정권이 종식되고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을 때에도 역사적 진실 규명을 전제로 용서와 화합을 주창했다. 이후에도 현실 정치와 단호하게 거리를 두고 부정부패, 소수자 혐오 등 인류 보편의 이상과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조전을 통해 “투투 대주교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 간의 평등과 화해를 건설함으로써 복음에 헌신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