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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20)아들 내외와 손녀에게 신앙을 이어주고 싶어요

조재연 비오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
입력일 2021-12-29 수정일 2021-12-29 발행일 2022-01-02 제 3276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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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황혼 육아를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예쁜 손녀를 보면서 제 아이를 키울 때와는 또 다르게 손녀를 더 잘 양육하고 싶은 마음을 느낍니다. 요즘 저의 고민은 손녀가 이제 첫영성체도 해야 하니까 아들 내외가 손녀의 신앙 교육에 대해 더 신경썼으면 좋겠고, 그러면서 아들 내외도 신앙생활이 깊어지는 계기를 만들어 가면 좋겠는데 섣불리 이야기했다가 간섭처럼 느끼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워요. 현명하게 아들 내외와 손녀의 신앙을 북돋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오늘날 맞벌이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황혼 시기에도 손자녀 육아에 전념하는 조부모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조부모들의 노력으로 많은 부모들이 안정감 있게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부모와 조부모 사이에 갈등을 겪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부모도 조부모도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때때로 방향이 어긋나거나 소통이 부족해 생기는 갈등이지요. 이를 잘 풀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의 원칙을 바탕으로 서로가 가진 강점을 존중하며 협력하는 관계로 전환해나가야 합니다.

첫째, 양육의 주도권과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조부모가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더라도 아이의 주 양육자는 부모입니다. 따라서 아이와 관련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반드시 부모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며, 부모 또한 그 책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둘째, 때를 놓치지 않는 소통을 위해 정기적인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은 부모는 부모대로 자신의 생각과 교육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조부모는 조부모대로 손자녀에 대한 관찰을 비롯해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눌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가 될 것입니다.

셋째, 좋은 관계를 갖기 위해 서로 애써야 합니다. 부모와 조부모가 서로 좋은 관계를 맺을 때 손자녀 또한 조부모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조부모의 지혜와 신앙 또한 손자녀에게 잘 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함께 노력하고 있는 서로에게 감사를 표현합시다. 이러한 모습은 아이의 인품 양성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처음인 부모들은 매 순간 무엇이 아이를 위해 좋은 선택일지 몰라 막막함을 느낍니다. 또한 책임감으로 긴장 속에 있으며 여유를 갖기 어렵지요. 하지만 조부모는 다릅니다. 세월을 지나오며 지혜와 여유를 갖게 된 조부모는 가족의 전통과 신앙의 뿌리로서 단단하게 부모와 손자녀 모두 지탱해 줄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부모는 어떻게 신앙의 뿌리로서의 역할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첫째, 이야기꾼으로서 신앙의 전달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가르침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전달됩니다. 식사 전후 기도를 함께 바치는 것, 매일의 정해진 기도시간에 손자녀에게 초를 켤 기회를 주는 것, 손자녀가 영유아라면 때론 함께 평일 미사를

봉헌하거나, 성당을 산책하는 것처럼 일상 안에서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 나누어 주십시오. 조부모의 이러한 모범과 나눔은 자녀와 손자녀의 삶에 스며들어 있다가 언젠가 스스로 실천하는 기회로 연결될 것입니다.

둘째, 손자녀의 신앙생활과 관련해서 칠성사의 때를 놓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가족이 신앙을 중심으로 마음을 모아야 할 때를 알아차리게 도와주는 것, 가족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을 인지하게 도와주는 것 또한 신앙을 지닌 조부모가 할 수 있는 특별한 역할입니다.

마지막으로 흔들리지 않는 기도의 기둥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긴 세월 세파의 풍랑 속에서도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너희가 비록 백발이 성성해도 나는 여전히 너희를 업고 다니리라”(이사야 46,4 공동번역)고 말씀하시는 한결같은 하느님의 사랑 덕분입니다. 자녀와 손자녀들이 기쁨과 희망, 고통과 번민 속에 흔들리지 않고 이와 같은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조부모에게 자녀와 손자녀들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이상의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티모테오에게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에게 깃들어 있던 그 믿음이, 이제는 그대에게도 깃들어 있다고 확신”(2티모 1,5)하신 것처럼 우리 자녀와 손자녀를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냅시다. 그때 우리도 기도하는 자녀와 손자녀의 임종경을 들으며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은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조재연 비오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