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나는 이렇게 믿습니다 / 김형태

김형태(요한) 변호사
입력일 2021-12-14 수정일 2021-12-15 발행일 2021-12-19 제 327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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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신부님이 쓴 글을 보았습니다. 신부님은 해고된 노동자의 복직을 위해 단식을 했지만 결국 노동자는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답니다. 단식을 너무 오래 해서 몸은 몸대로 크게 상했고 마음도 너무 아팠답니다. 내 마음도 짠했습니다. 세상은 왜 이리도 잘못 돌아가고 있는 걸까. 신부님의 탄식이 내 탄식이 됩니다. TV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세상에 사는 게 정말 무섭습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세상을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요,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화택(火宅), 불이 붙은 집이라는데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에 귀의합니다. 스승님들을 통해서 험한 세상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 위로받고 싶습니다. ‘나’의 복을 빌러 교회에 가고 절에 갑니다.

나도 그랬지요. 고등학생 시절 죽는 게 무서웠고 예수님 잘 믿으면 살아서 복 받고 죽어서 천당 간다니 얼마나 복된 소식이던지. 구원받았다는 기쁨에 남산에 가서 놀러 온 내 또래 학생들한테 이 ‘기쁜 소식’을 믿으라고 강요를 했더랬습니다. “너는 영생을 얻을 수 있어, 너 안 죽어.” 철이 들면서 내 꼴을 돌아보니 영생을 얻었다는 내가 사실은 끊임없이 갖가지 욕심에 끌려 다니고 나 자신과 남에게 걸핏하면 화를 내고 예수님 말씀의 참된 뜻이 무언지,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무언지는 전혀 모르는 무지렁이더군요. 이걸 벗어나 보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남 돕는 일도 해 보았죠.

그런데 남 돕는 일도 그 일을 통해서 내가 잘난 걸 확인하는 나락이 되곤 하는 거였어요. 하긴 예수님을 친견했다는 바오로도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하며 스스로의 한계에 좌절했다는 거지요.

50억 년 전 무기물에서 세포 하나가 생겨났지요. 그 이후 생명체는 외부를 인식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외부환경을 이용하도록 진화했습니다. 생명체=외부와 대립된 ‘자기’이니, 생명체는 본질상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거겠지요. 먹이활동을 통해서 이 한 몸 부지해야 하고, 또 나를 영원히 존속시키기 위해 생식을 통해 내 유전자를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것. 독립된 삶이 불가능하기에 생명체와 무생물의 중간이라는 코로나19 바이러스부터, 각종 세균, 저 산 위의 나무들, 돼지,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생명체는 열심히 먹고 번식하는 이기적 존재들이지요. 그래서 세상은 이리도 모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이기적인 개체들을 내신 전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진화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의식’을 주셨고 우리는 이 의식을 통해서 이기적인 자기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이기적인 ‘자기’ 개체를 넘어서서 전체이신, 근원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갑니다. 이게 바로 구원이요, 영원한 생명이라고 나는 알아 모시게 됐습니다. 사실 이 의식이란 것이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뇌 신경망의 상호작용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이 물리, 화학, 심리적 단계를 거쳐 차츰 상승하는 뇌 신경망의 ‘작용’ 속에서 비로소 자기를 돌아보는 기능이 신비롭게 떠오르니 이곳이 바로 하느님이 거하시는 우리의 참 내면세계일 거란 생각입니다.

불교의 윤회도 개체가 이기심에 빠져서 한세상 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을 되풀이하는 현실을 말하는 거고, 이 개체의 이기적인 마음을 똑바로 마주 보는 의식이 부처요, 이 의식을 통해 개체의 이기심을 넘어서서 욕심이나 화냄,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바로 해탈이라고 이해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개체로 살아가는 동안 생존과 번식이라는 이기(利己)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개체인 자기와 마주 서서 개체의 한계를 반성하는 의식을 통해 순간순간 이기심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걸으신 이 길을 따라가는 게 바로 신앙생활이겠지요. 그리고 이 길을 따라가는 행위의 결과는 우리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에 매달리면 자칫 ‘나’라는 이기심이 슬며시 고개를 듭니다.

신부님은 노동자가 일터로 돌아가기를 빌며 단식으로 스승님 가신 길을 따라갔습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러니 부디 복직이 안 된 결과에 너무 슬퍼하지 마시길 빕니다.

※그동안 집필해 주신 김형태 변호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김형태(요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