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605) ‘내가 힘든 얼굴을 하면 안 되거든…’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10-19 수정일 2021-10-19 발행일 2021-10-24 제 326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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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 일이 있을 때마다 도와주시는 고마운 누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수도권 어느 본당 주임인 동창 신부의 누님이랍니다. 그분은 내가 뭔가를 팔면 언제나 홍보대사가 되십니다. 지인들에게 성지와 물품 소개를 하시면서 도움을 주십니다. 그날도 누님께서 굴비를 주문하셨는데, 1시간 후 동창 신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석진아. 너 요즘 수도원과 순례자 쉼터 짓는 것 때문에 굴비를 판다면서?”

“어떻게 알았어?” “누나가 방금 전화로 말해 줬어. 누나는 내 형편을 알고 있어서, 네가 하는 일을 내게 전하지 않았대. 암튼 나에게 도와 달라 말을 좀 하지?”

“아니, 뭐 미안하게시리.”

“실은 나도 지금 성당을 짓고 있거든.”

“그래? 아이고, 너도 힘들 텐데, 나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겠니?”

“너희는 공사비가 어떻게 되냐?”

“아직까지 정해진 것은 없는데, 꽤 되겠지, 뭐. 그래서 나는 굴비만 열심히 팔고 있어.”

“그래? 우리 성당 신축 공사비는 아마도 너희 공사비의 10배는 될 거야. 그래서 현재는 빚을 내어 성당 공사를 하고 있는 처지야. 암튼 그래도 신자들과 ‘으쌰으쌰’ 하면서 날마다 빚 갚는 재미로 살고 있어.”

“나도 수도원이 지어진다는 행복감에 힘들어도 기쁘게 굴비를 팔고 있고, 여기저기 교우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힘도 얻고.”

“그래. 그렇게 사는 거야. 사제와 신자 모두가 힘을 합쳐서 성당을 지어야 성당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커지고, 그러면서 본당 공동체가 잘 운영이 되지.”

“그런데 그렇게 큰 본당을 짓고, 건축비 마련에 애를 쓰다보면 힘들거나 지치지는 않니?”

“석진아. 너에게는 말하지만, 사실은 정말 힘들어. 사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 본당 신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지만 무척 힘들어. 그러나 내가 신자들 앞에서 힘든 얼굴을 하면 안 되거든. 우리 신자들은 내 얼굴을 보고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한 주간을 시작하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야, 내 마음도 울컥 하네. 너의 말에 동감이야.”

“석진아, 나는 신부로 사는 동안 다른 건 잘 한 것이 없지만, 이것 하나는 잘한 건 있다. 25년 정도를 신부로 사는 동안 교우들에게 한 번도 야단을 치거나, 소리쳐 본 적이 없어. 아니, 그럴 일을 만들지를 않아. 사실, 나라고 신자들과의 관계에서 힘든 일이 없고, 속상한 일이 없었겠니? 그런데 언제나 대화로 풀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아.”

“정말 잘 살았네.”

“아냐. 그냥 사제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거야. 그리고 신자들은 세상 물정을 우리보다 더 잘 알아. 그래서 내가 지금 건축비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도 알지. 그러기에 내가 힘든 표정을 짓고 있으면 신자들이 성당에 나와서 기쁘겠어?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미소를 짓고, 신자들 앞에서 더 웃으려고 노력을 하는 거지. 신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하니, 우리 신자들도 힘을 내고 내가 하는 일에 기쁘게 따라와 주는 것 같아.”

동창 신부는 조만간 형편이 되면, 굴비를 단체로 주문해 주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힘든 얼굴을 하면 안 되거든.’ 그 말이 계속 여운처럼 남았습니다. 어쩌면 그 말이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이며, 좋은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는 모습이라 생각해 봅니다. ‘어른’이며, ‘좋은 아버지’가 되는 삶 –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님을 또 다시 성찰하게 됩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