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6·25 순교자’ 에밀 카폰 신부, 70년 만에 고향서 장례미사

입력일 2021-10-05 수정일 2021-10-05 발행일 2021-10-10 제 3264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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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北 포로수용소서 선종
지난 3월 하와이서 유해 발견
고향 美 캔자스주로 옮겨져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를 실은 마차가 9월 29일 캔자스주 위치타교구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당에 들어서고 있다. CNS

【외신종합】 6·25전쟁 당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부상병을 치료하는 등 인류애를 실천한 ‘하느님의 종’ 에밀 카폰 신부의 장례미사가 선종 70년 만에 고향 땅 캔자스에서 봉헌됐다.

미국 캔자스주 위치타교구는 9월 29일 파크시티 하트만 아레나에서 카폰 신부의 장례미사를 봉헌했다. 미사에는 신자 5000여 명이 참례해 카폰 신부를 추모했다. 카폰 신부의 유해는 장례미사 뒤 위치타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당에 안치됐다. 1951년 중공군 포로수용소에서 선종한 지 70년 만이다.

미사를 주례한 위치타교구장 칼 켐 주교는 카폰 신부는 온전히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평생을 살았다고 강조했다. 켐 주교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기에 우리는 영원한 삶을 얻게 됐다”면서 “카폰 신부도 삶의 마지막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었다”고 말했다.

위치타교구 소속으로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 군종신부로 참전한 카폰 신부는 1950년 11월 1일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혀 1951년 5월 23일 북한에 있던 한 포로수용소에서 선종했다. 당시 그의 나이 35세였다. 카폰 신부는 선종하기 전 “내 걱정은 하지 말라”면서 “나는 항상 내가 가길 원했던 곳으로 가고 있으며, 그곳에 도착하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켐 주교는 “그의 동료 군인과 전쟁포로들이 전한 그의 마지막 삶의 순간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 준다”면서 “그는 희망을 전하는 사도였으며, 그가 전한 사랑은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 안에 깊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카폰 신부의 유해는 지난 3월 하와이주 호놀룰루 소재 국립태평양기념묘지 내 무명용사 묘역에서 발견됐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은 2019년부터 호놀룰루 국립태평양기념묘지에 묻혀 있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전사자에 대한 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중, 유해의 치아와 친척과의 DNA 대조 작업을 거쳐 카폰 신부 유해를 찾아냈다.

에밀 카폰 신부.
하와이에 있던 카폰 신부의 유해는 9월 25일 캔자스에 도착했다. 그의 유해는 고향인 작은 시골마을 필센을 거쳐 27일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대성당에서는 이날 위치타교구 사제들을 중심으로 기도회가 열렸다. 그의 유해는 28일 하트만 아레나로 옮겨졌으며, 이곳에서도 밤샘 기도회가 열렸다. 29일 장례미사 뒤에는 대성당의 대형 십자가 아래 대리석관에 안장됐다.

카폰 신부의 영웅적 삶은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미군들의 증언을 통해 1954년 책으로 출간됐다. 우리나라에는 1956년 당시 신학생이던 고(故) 정진석 추기경이 「종군 신부 카폰 이야기」로 번역하며 널리 소개됐다. 카폰 신부는 2013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으며, 지난 7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됐다.

미국 위치타교구는 카폰 신부의 시복을 추진하고 있으며, 앞서 교황청 시성성은 1993년 카폰 신부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