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교구 지정 순례지 탐방] (12)양근성지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1-07-06 수정일 2021-07-06 발행일 2021-07-11 제 325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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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교회 공동체 이룬 한국 천주교회 뿌리
권철신 등 초기 신앙선조 활동
도보와 수상 순례로 구성된 ‘양근성지 하늘 사랑 길’ 조성
순교자 전시관도 마련할 계획

양근성지 순교자 광장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

남한강이 옆으로 끼고 흐르는 이곳 ‘양근(楊根)’의 지명은 ‘버드나무 뿌리’라는 뜻으로 고구려 시대에 근거를 둔다. 상고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돼 홍수 피해를 대비하기 위해 둑을 만들고 버드나무를 심어 경관을 살리며 토사 유실을 막았다고 한다. 여기서 ‘튼튼한 근원’, ‘기초’라는 ‘양제근기’(楊提根基)가 유래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잘 자라는 모습에 빗대어 초기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을 상징했던 버드나무, 그리고 그 뿌리라는 의미의 ‘양근’. 한국천주교회 신앙의 근원이라는 양근성지의 교회사적 의미와도 너무나 닮아있다.

1784년 중국 북경에서 그랑몽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한국 최초로 영세한 이승훈은 귀국 후 서울 수표교 근처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의 집에서 이벽과 하느님의 종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경기도 양평의 양근으로 내려와 하느님의 종 권철신(암브로시오)과 충청도의 이존창(루도비코), 전라도의 유항검(아우구스티노)에게 세례를 줬다. 권일신은 천진암 주어사 강학을 주도했고, 이존창과 유항검은 각각 ‘내포의 사도’ ‘호남의 사도’로 불리며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하느님을 전파한 인물이다.

이로써 마재의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 가문을 비롯 양평 읍내 권철신·권일신 형제 가문과 복자 조숙(베드로) 등 도곡리 능말의 조씨 가문이 본격적으로 천주교 신앙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양근에서는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이들이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십자가의 길 등을 바치며 신앙생활을 실천했다. 천주교 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가성직 제도를 통해 교회의 기틀을 다졌다. 이곳이 ‘한국 천주교회 요람’으로 불리는 이유다.

권철신과 권일신, 복자 조숙과 복자 권천례(데레사) 동정부부를 비롯한 복자 조용삼(베드로), 복자 윤운혜(루치아)가 태어나고 복자 홍익만(안토니오)이 살았던 장소, 그리고 복자 윤유오(야고보)와 복자 윤점혜(아가타), 복자 권상문(세바스티아노)이 참수된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양근은 한국천주교회 공동체 설립의 처음이자 전교의 중심지, 순교자들의 고향, 신앙선조의 순교터다.

양근성지(전담 권일수 신부)는 2003년 전담신부 발령과 함께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대형 십자가와 기념성당 등이 조성됐고, 2010년에는 순교자 광장에 십자가의 길과 조숙·권천례 동정순교부부상, 순교 조형물 등이 건립됐다.

양근성지 순교자기념성당 전경.

양근 출신으로 1868년 5월 28일 서소문 밖 사형 터에서 순교한 권일신의 증손자 권복(프란치스코)의 묘소.

현재의 성당은 2011년 5월 7일 축복식을 거행했다. 2013년 5월 23일에는 양근 출신으로 1868년 5월 28일 서소문 밖 사형 터에서 순교한 권일신의 증손자 권복(프란치스코)의 유해를 성지 내에 안치했다.

외형만을 따지자면 성지는 교구 내에서도 매우 작은 규모다. 순례객을 위해서도 198㎡ 정도의 소성당, 즉 최소한의 전례 공간과 간단하게 쉴 수 있는 순례자 하우스 정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성지를 둘러싼 지역 전반에서 순교자들의 자취가 숨 쉰다.

양근천이 한강과 만나는 지역, 일명 오밋다리 부근 백사장에서는 순교자들의 목이 잘리고 시신이 내버려졌다. 가까운 용문산 용문사는 권일신이 을사 추조적발사건 이후 양근 출신 조동섬(유스티노)과 함께 8일간 침묵 피정을 한 곳이며, 지난 5월 29일 순교자 현양비 축복식이 거행된 도곡리 능말은 조숙과 조동섬, 병인박해 때 순교한 조중구(타대오), 조인달 등 순교자들의 고향이다.

성지는 ‘양근성지 하늘 사랑 길’이라는 이름으로 도보 순례와 수상 순례 코스를 마련하고 있다. 도보 순례는 이포보 방향, 양수리 방향 등 3가지 코스가 있다. 수상 순례는 배를 타고 남한강변에서 바라보는 양근성지, 감호암과 감호정 등 7개 포스트를 찾아보는 여정으로 구성된다.

현재 주차장 부지에 대성당과 식당을 세울 예정인 성지는 또 순례자 하우스 자리에 양근성지 시작과 전파를 다룬 순교자 전시관 건축도 계획 중이다. 양평군청과의 긴밀한 협조로 지난해부터 성지 앞 떠드렁 섬에 ‘떠드렁 섬 예수상’ 설치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대부분 성지가 마주하는 현실이지만, 문제는 대면 성지순례가 어려워지며 순례객이 줄고 재정적인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중고를 겪는 셈이다. 성지 측은 그저 미사가 제대로 봉헌될 수 있도록 10여 명 신자들이라도 꾸준히 성지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권일수 신부는 “양근이 없었다면 김대건 신부님도, 정하상 성인도 없었다고 할 만큼, 이곳은 한국 천주교의 뿌리 역할을 한 곳”이라며 “평신도들에 의한, 평신도들을 위한, 평신도들의 기도와 순교로 이루어진 세계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지”라고 성지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문의 031-775-3357 양근성지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