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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장교의 병영일기] 나는 총무다! 하느님의 도구 / 권영훈 중령

권영훈(레지나) 중령·국군수도병원 내과간호과장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1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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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95년에 간호장교 육군 소위로 임관해 국군수도·대구·덕정·강릉 등 전국 군병원에서 근무하며, 근무하는 곳마다 성당 간부 신자회인 사목회 총무를 맡았습니다. 제가 초급장교이던 시절에는 군단지원병원급 이하 군병원 성당은 대부분 소규모 공소였기 때문에 군종신부님 한 분이 여러 부대를 담당하시곤 했고, 사목회 총무가 맡은 일도 다양했습니다.

군종병도 없던 시절, 굉장히 많은 추억이 떠오릅니다. 병원에 새로 온 간부 신자 현황을 파악해 미사 시간을 안내했고,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회비를 능숙하게 걷는 것이었습니다. 예산 운영 능력은 사목회 총무에게 요구되는 아주 중요한 역량이거든요. 매주 주일미사 후 환자와 기간병 신자들을 위한 간식을 준비하고, 성당 시설물 보수 소요를 확인해 크고 작은 행정업무를 처리하며, 부활·성탄에는 인근 민간성당으로 환자, 기간병 신자들을 인솔해 차량에 선탑하는 등 총무 역할은 무궁무진했습니다. 여군 세례성사, 견진성사에서는 한 번에 일곱, 여덟 명의 대모가 되기도 한답니다. 흡사 일지매 같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저는 부족한 신앙심에도 불구하고 자칭 군병원 성당 ‘총무 전담장교’였습니다.

국군의무사령부 성요셉본당 사목회 총무를 맡았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선배님! 신부님은 지금 어디에 계세요?” 수술실 간호장교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고 “왜? 신부님은 인근 부대 미사 집전 가셨지”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후배 간호장교는 머뭇거리며 누군가와 나지막히 이야기를 나누더니 “선배님! 그럼 선배님이라도 지금 바로 수술 준비실로 오세요!”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리지 뭡니까. 저는 수술실을 향해 빛의 속도로 달려갔고, 수술실 입구에서 카트에 누운 환자와 간호장교들을 보았습니다.

“당장 수술 들어가셔야 하는데, 너무 불안하시다며 신부님께 강복을 꼭 받게 해 달라시네요.” “뭐?” 순간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건 바로 총무의 기지입니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기도해 주세요.” “네, 그럼 함께 주님의 기도를 바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저는 사실 이런 경우가 처음이고 너무 쑥스러워 잦아드는 목소리로, 그러나 진심을 다해 기도드렸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환자를 향해 “김 소령님! 수술 잘 받고 오세요.” 밝게 인사를 한 후 수술실로 들여보냈습니다.

때마침, 신부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총무님, 무슨 일 있어요?” “네. 신부님의 기도가 필요한 분이 계셨는데요, 아무튼 오늘도 총무가 한 건 했습니다! 으흐흐.” 쑥스러운 만큼 기분이 좋았습니다. 병동으로 돌아오면서 흥얼흥얼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느님! 당신은 나의 빛, 나의 기쁨 되시니, 나는 하느님 당신의 몸, 가장 귀한 도구 되리라.”

권영훈(레지나) 중령·국군수도병원 내과간호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