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교구 지정 순례지 탐방] (6)단내 성가정 성지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1-05-25 수정일 2021-05-25 발행일 2021-05-30 제 324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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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재촉하며 신자들 찾던 목자의 애틋함 서린 곳
김대건 신부 사목 활동지이자 일찍부터 천주교 신앙 전해진 유서 깊은 교우촌으로도 유명
셋째 주 토요일 가정 성화 미사
마지막 주일 도보순례 피정도

단내 성가정 성지의 성가정 광장 전경. 성가정상과 5위 성인 순교비 등이 눈에 들어온다.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하이 진자샹(金家巷)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그해 10월 조선에 입국한다. 그리고 11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특히 경기도 용인 지방을 중심으로 신자들을 만나고 성사를 집전했다. 이때 사목방문 장소로는 용인, 양지터골, 은다라니, 이천의 단내, 시어골 등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성인은 깊은 신앙과 신심, 유창한 말씨로 단번에 신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얻었다고 한다.

와룡산이 감싸고 있는 경기도 이천 단천리 소재 단내 성가정 성지(전담 이용규 신부)는 이처럼 김 신부의 사목 활동지였다. 단내 출신 순교자, 하느님의 종 정은(바오로,1804~1867) 후손 정규량 신부(1883~1952)가 저술한 「정씨 가사」(1931)를 참조하면 그때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김대건 신부는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러 다닐 때 밤 시간을 이용했다. 미사 짐도 없이 이천 동산리에 들렀다가 단내에 도착해, 정은의 집 대문 밖에서 ‘정 생원, 정 생원’하며 불렀다. 그리고 함께 온 복사는 “김 신부님께서 성사를 주시러 오셨으니 주저하지 말고 빨리 나오시오”라고 했다.

이에 식구들은 이웃들이 눈치챌까 쉬쉬하며 김 신부를 방으로 모시고 성사 받을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것은 벽에 깨끗한 종이를 붙이고 그 위에 숨겨놓았던 십자가를 정성스럽게 걸어두는 것이었다.

김 신부는 단내와 인근 동산리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골배마실에 들러 은이공소까지 갔다. 방문 일정을 다 마치면 동이 텄다.

떠나는 김 신부를 전송하기 위해 정은과 그 가족들이 밖으로 나오면, 성인은 “내가 이렇게 밤중에 다니는 것은 나 자신보다도 교우들에 대한 외인 이목 때문이니 부디 나오지 말고 집 안에 있으시오”라고 만류했다. 그래도 뒷모습이라도 보고자 산모퉁이까지 뒤따라가면 어느새 성인의 자취는 사라져 섭섭한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성지 주차장에서 사무실로 이르는 오솔길 ‘김대건 신부님 로(路)’는 김 신부가 정은의 집을 찾아 성사를 주고 골배마실로 떠날 때 걸었던 길이다. 성지 진입로이기도 한 이 길을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신자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밤 시간에 길을 재촉했던 목자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성당 제대에는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와룡산 정상에 건립된 예수성심상. 이곳에서는 김대건 신부의 사목활동로 등을 조망할 수 있다.

김대건 신부님 로(路). 김대건 신부가 순교자 정은 바오로 집을 찾아 성사를 주고 골배마실로 떠날 때 걸었던 길이 성지 진입로로 조성돼 있다.

단내는 김대건 성인과의 인연뿐만 아니라 유서 깊은 교우촌으로도 유명하다. 이익의 제자이자 초기 천주교 신자였던 권철신 암브로시오와 친했던 이기양은 1788년부터 외갓집이 있던 단천리에 와서 살았다. 그의 아들 이총억은 이존창과 함께 권철신의 문하생이 되었다. 1779년 권철신이 주어사 천진암에서 강학회를 열 때 이총억도 참석했다.

이런 배경에서 단천리에는 일찍부터 천주교 신앙이 전해졌다. 한국교회 초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가톨릭 신앙을 고수하며 이어오고 있는 이곳은 그만큼 교우촌으로서도 가치가 매우 높은 장소다.

성지에는 하느님의 종 정은 바오로와 정양묵(베드로, 1820~1867)의 묘소가 있다. 두 사람은 재종손이자 대부-대자 관계다. 1866년 병인박해로 할아버지 정은 바오로가 체포되자 정양묵 베드로도 ‘대부를 따라 치명하러 왔으니 나도 죽여주시오’라며 스스로 광주 관아로 들어갔다. 이들은 남한산성에서 백지사형(白紙死刑, 젖은 종이를 얼굴에 덮어씌워 질식시키는 형벌)으로 함께 순교했다.

이곳에는 정은 바오로의 시신이 안장돼 있고 정양묵 베드로의 의묘가 있다. 정양묵 베드로의 시신을 찾지 못해 순교 터의 흙을 채취한 후 정은 옆에 묘를 만들었다.

성지는 아울러 이천이 고향인 이문우 요한 성인을 비롯해 이호영 베드로, 이 아가타 남매 성인, 조증이 바르바라 성녀 및 이천에서 체포돼 순교한 남편 남이관 세바스티아노 성인 등 순교성인 5위를 함께 현양한다. 이문우 성인을 제외하면 모두 가족 순교자다. 가족이 함께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하고 성덕의 정상에 도달하는 모습으로 가정 성화의 귀감을 보여준다.

성지는 이런 순교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아 가정 성화를 위해 기도하고 성가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구하기 위해 개발됐고 1987년 9월 15일 김남수 주교 주례로 축성식을 거행했다. 정은 바오로와 정양묵 베드로의 영성적 관계는 단내 성지가 성가정 성지로 선포된 정신적·영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성지는 5월 성모성월을 지내며 매 미사 전후로 이 땅의 모든 가정이 성가정을 본받아 거룩해지도록 묵주기도를 바쳤다. 특별히 난임 부부, 낙태로 힘들어하는 부부들을 기억했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 미사를 ‘가정 성화를 위한 감사 찬미 미사’로 봉헌하는 성지는 매월 마지막 주일에 전담 신부와 함께하는 도보순례 피정도 마련한다. 피정은 오전 11시 미사 후 묵주기도와 도보순례, 묵상 나눔 등으로 진행된다. 성지를 둘러싼 와룡산 계곡과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5.2㎞를 걸으며 묵상 시간을 갖는다. 순례 중에는 와룡산 정상에서 김대건 신부의 사목 활동 경로를 조망할 수 있다. 또 박해 시대 은신처였던 검은 바위와 굴 바위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문의 031-633-9531 단내 성가정 성지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