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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 선종] 조영관 신부에게 듣는 정 추기경 마지막 모습과 신앙 이야기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1-05-03 수정일 2021-05-04 발행일 2021-05-09 제 3244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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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행복 위해 늘 기도하고 고민했던 따뜻한 목자
삶의 중심이 늘 하느님이었던 사제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알기에 사는 동안 행복하다고 고백하기도
교회 어른으로서 지닌 마음의 짐 무의식 중에도 긴장감으로 드러나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셨던 어머니 같은 포근한 모습 그리워

‘포근한 작은 별’이 되고 싶다던 고(故) 정진석 추기경. 정 추기경은 추기경 서임 감사미사에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는 작은 별이 되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큰 별이 되지 못한다고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어둠 속에 있는 많은 이들을 위해 빛을 밝혀줬다.

이런 그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켜온 조영관 신부(동성고등학교 교장)에게 정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과 그가 남기고 간 신앙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 신부는 2011년 8월부터 약 10개월간 비서 신부를 지냈으며, 이후 선종 직전까지 10여 년간 정 추기경을 수행했다.

-정진석 추기경님께서 병환 중에 “하느님 만세!”라고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어떤 상황이었나요?

“2월 말에 입원하시고 맨 처음 위급하셨을 때 교구 주교님들과 관련 신부님들이 계시는 자리에서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님으로부터 병자성사를 받으셨어요. 그런 뒤에 계속 하느님 믿어야 한다고, 그래야 행복하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시고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큰 은총이고 복인지 모른다고, 우리가 행복한 것이 하느님의 뜻이지만, 이 행복을 유지하려면 하느님 믿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마지막에 ‘하느님 만세!’라고 하셨습니다. 저희 모두 놀랐어요,

실제로 추기경님의 삶의 중심은 하느님이셨어요. 아마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추기경님만의 표현이셨던 것 같아요.”

-정 추기경님다운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편찮으신 와중에도 여전히 유머 있는 모습이었네요.

“네~ 살아오신 걸 지켜보면 추기경님은 하느님에 대한 체험을 강하게 하신 거 같아요. 아무래도 전쟁 속에서도 살려 주시고 또 사제로 이끌어 주셨으니….

병원에 계시면서 의식이 있을 때 “추기경님~ 언제가 가장 행복하셨어요?”라고 물어봤어요. 추기경님께서 잠시 생각하시더니 “나는 늘 행복했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어떻게 매일 행복하셨어요?” 그랬더니 “힘든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하느님께서 돌봐주시고 사랑해주시고, 나도 사랑하고 그러다보니 하루하루 사는 게 행복했지(허허~)”하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하느님께로 간다는 표현을 많이 하셨어요. 위급에 처하셨다가 깨어나셨을 때 ‘하늘나라에 갔다 오셨어요?’, ‘예수님 만나셨어요?’라고 계속 물어보니까 만나고 오셨대요.(웃음)”

-추기경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천천히 준비 해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추기경님이 마지막으로 떠나실 때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아프시고 늘 힘드셨어요. 불면증도 있었고요. 그런데 선종하시는 날에는 하루 종일 주무셨어요. 코를 골 정도로 깊게 주무시다가 갑자기 30분 만에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 교회 어른으로서 마음의 짐이 컸던 것 같아요. 늘 힘들어 하시고 긴장하시고 그랬던 것들이 무의식 중에도 나타날 정도였죠. 그런데 정말 모든 걸 다 놓고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병원에서도 매일 끝기도가 끝나면 항상 선종을 위한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비서 수녀님과 같이요. 그런데 정말 원하시던 대로 편안하게 가셨어요.”

2012년 6월 15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이임 감사미사를 봉헌한 뒤 신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는 정진석 추기경을 수행하고 있는 조영관 신부(정 추기경 오른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정진석 추기경이 1999년 7월 9일 천호동본당 사목방문 중 어린이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진석 추기경’ 하면 학자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옆에서 지켜보신 추기경님의 모습은 어땠나요?

“염 추기경님 말씀대로 어머니 같은 분이셨어요. 묵묵히 들으시며 ‘응~ 그래그래~’하시는 편이었죠. 추기경님께서 표현을 많이 하지는 않으셨지만 속정이 참 깊으셨어요. 사진 찍을 때 제가 주로 뒤에서 찍는 데 앞으로 와서 찍자고 배려해 주신 부분도 기억에 남습니다.

추기경님은 ‘신앙의 체험’을 강조하셨어요. 사람들이 하느님 안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지를 고민하셨죠. 추기경님은 책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셨는데, 아마 그간 집필하신 책은 많은 신자들에게 믿음과 교회 가르침을 전해주기 위한 도구였던 것 같아요.”

-추기경님께 느낀 인간적인 매력도 소개해주신다면.

“아이들을 되게 좋아하셨어요. 아이들도 추기경님을 좋아했어요. 견진성사 주례 하러 가시면 복사 서는 아이들과 항상 사진 찍으시고, 실수해도 항상 괜찮다고 격려해 주시면서 전폭적으로 아이들을 받아 주시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사제들에게도, 그들의 좋은 면을 보고 칭찬해 주시려고 하셨어요. 그런데 교구장이셨을 때는 표현을 많이 못하셨대요. 누구 잘 한다고 칭찬하면 편애하는 것처럼 보이고 누군가 시기 할까봐요. 그런데 은퇴 하시고는 그런 칭찬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추기경님께 하시고 싶은 말씀을 남겨주시겠어요.

“되돌아보면 정진석 추기경님을 모셔서 영광이었습니다. 많은 걸 배웠던 거 같아요. 특히 추기경님께서 마지막에 병원에 계실 때 많이 느낀 것은, 아프신 데도 끝기도 꼭 하라고 하신 것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미사를 집전하면 의식이 반짝 돌아오고, 잠꼬대도 전부 신앙적인 거였어요.

‘아, 정말 하느님 안에 사셨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요한복음 1장 47절에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나타나엘을 보시고는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고 말씀 하셨어요. 저는 이 장면에서 추기경님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한 생을 사셨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