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부활 기획] 빈민 무료급식소 ‘영보의 집’ 이야기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1-03-30 수정일 2021-03-30 발행일 2021-04-04 제 3238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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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부활의 기적 일어나는 ‘수녀님표’ 도시락집
차상위계층·인근 노숙인에 주 5일 도시락 배달 이어 와
어려움 겪을 때마다 기적처럼 봉사자·후원자 도움 이어져 하느님의 손길 깊이 깨달아

대상자들에게 배달될 도시락 통에 반찬을 담고 있는 강숙희 수녀와 봉사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중부대로 1504번길 5번지, 차량 통행이 잦은 길가에 무심코 지나치면 찾지 못할 작은 문패가 달린 곳.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가 운영하는 빈민 무료급식소 ‘영보의 집’(책임 강숙희 수녀)이다. 이곳은 수도회가 설립 60주년과 수원교구 인가 40주년을 맞아 독거노인, 외국인 노동자, 노숙인 등 빈민 취약계층 및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위해 지난 2019년 12월 문을 열었다. 어려운 이들에게 밥을 나누는 급식소 운영은 수도회 총회 때마다 대두된 사안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점점 더 극심해지는 시대 안에서 한 끼 밥을 챙겨 먹기 힘든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는 수도회 고유 마크 안에도 집약돼 있는 ‘애덕’의 실천이자, 수도회 카리스마의 구현이기도 하다.

현재 영보의 집에는 강숙희(아녜스) 수녀를 포함해 네 명의 수녀가 소임을 맡고 있다. 원래 식당이었던 곳을 빌려서 사용 중이다. 수녀들은 봉사자들과 함께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 점심까지 세 끼가 담긴 도시락을 만들어 50여 명에게 나눈다. 용인에서도 독거 어르신이 많은 농촌 지역 등 다섯 군데를 찾아 배달하고 있다.

선정 대상은 차상위계층이다. 이들은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 바로 위 계층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보다 더 숨어있고 어려운 잠재적 빈곤 계층이라는 점에서 주력 대상이 됐다. 봉사자들이 지역에서 찾아내면 수녀들이 방문해 어떤 상황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해 도움을 준다. 강 수녀는 “적어도 1년에 1~2차례 정도 방문해서 상태를 보고자 하는데,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방문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도시락 나눔은 반드시 경제적으로 힘든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끼니 해결이 필요한 이들도 해당된다. 부부 모두 암 투병 중이라 밥을 해 먹기 어려웠던 사례 등을 찾을 수 있다. 이 부부는 석 달 정도 도시락을 받다가 상태가 호전돼 다른 이웃에게 도시락을 양보했다.

인근 노숙인들에게도 도시락이 나눠지는데, 문을 연 초반에는 노숙인들이 와서 시비를 걸고 소란을 피웠다. 이제는 그들 중 개신교 신자였던 사람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싶다는 뜻도 내비친다. 어디선가 받은 간식도 가져와 나누는 등 이웃이 됐다.

도시락은 수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5일 배달된다. 오전 8시40분~9시에 도착해 음식을 준비하는 수녀들은 오후 7시경 수거한 도시락 통 설거지를 마쳐야 하루 일과를 끝낸다.

기자가 방문한 날 메뉴는 소불고기와 두부조림, 모듬 장아찌 등이었다. 간식으로 수녀들이 직접 만든 약밥도 준비됐다. 오후 2시30분경, 이날 봉사를 맡은 이들도 도착했고, 준비된 메뉴가 도시락 통에 차례로 담겼다. 불고기를 싸 먹을 상추까지 봉지에 담고 음료수도 포장했다. 아이가 있는 가정, 당뇨병으로 보리밥을 제공해야 하는 가정을 위해 별도의 도시락을 마련했다. 3시30분경이 되자 배달에 나설 봉사자들이 왔다.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행낭에 도시락을 담고 각자 맡은 배달지로 떠났다. 푸드뱅크에서 온 편의점 도시락과 김밥 등이 추가돼 행낭은 더 부풀었다.

도시락 행낭을 점검 중인 봉사자들.

50여 명의 봉사자들은 요일별로 준비, 조리, 배식, 배달 파트로 나뉜다. 부부 봉사자들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 배달 봉사에는 부부들이 많이 참여한다.

부부 봉사자 김선희(세레나·제1대리구 양지본당)씨는 “수녀님들의 이웃을 위한 묵묵한 봉사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며 “봉사를 하며 불평이 없어졌고 은총 속에 산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영보의 집 운영은 기본적으로 수녀회가 부담하는 것으로 시작됐으나 뜻있는 이들의 후원도 받는다. 후원 얘기가 나오자 강숙희 수녀는 “시작은 우리가 했지만 영보의 집은 하느님이 만들어 가시는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봉사자도 자청해서 찾아오고 쌀이나 음식 재료도 부족하다 싶으면 ‘줄줄이 사탕’처럼 영보의 집 창고에 쌓이기 때문이다.

강 수녀는 뒷얘기들을 들려줬다. 운영 초반 쌀이 떨어져 걱정하고 있던 차였다. 대상자 방문을 마치고 오던 중 함께 간 봉사자가 갑자기 ‘정미소에 가자’고 하더니 쌀을 한 가마니 사줬다. 그때 강 수녀는 울어버렸단다. 또 15년 만에 연락을 해 온 한 지인은 필요한 것을 물었고, 쌀을 후원했다. 그리고 그 지인은 다른 후원자들과 함께 ‘쌀 후원 릴레이’를 시작했다. 릴레이는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도시락 대상자들의 이야기에서도 하느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함께 살던 아들이 전신마비로 눕게 되자 90대 노모가 일을 하러 나가야 했던 경우, 어느 날 아들이 회복돼 “수녀님 도움을 받았는데 뭐라도 하겠다”고 했다.

강숙희 수녀(왼쪽)와 차정순 수녀가 후원자들에게 나눌 부활 계란을 포장하고 있다.

그렇게 영보의 집에서는 매일 부활의 기적이 일어난다. 그 기적은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 예수님을 닮아 가난한 이웃을 위해 가진 것을 내어놓고 나누는 데서 온다.

수녀들은 “영보의 집이 모든 이들에게 부활하신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곳을 통해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 안에 실천하도록 하느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문의: 010-4076-1947 강숙희 수녀

※후원: 농협 351-0882-3983-63 강숙희, 농협 211086-51-003405 천주교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