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길에서 쓰는 교구사] 북수동본당(상)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8-10-09 수정일 2018-10-09 발행일 2018-10-14 제 3115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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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시대 수많은 신자들 순교한 땅
본당 설립 후 레지오마리애 중심지로

북수동성당 전경.

교구의 중심도시라 할 수 있는 수원. 수원 시내에 처음으로 설립된 제1대리구 북수동본당은 다양한 방면에서 교구사의 중심에 서 있다. 교구에서 가장 많은 신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평신도사도직단체인 레지오마리애 ‘천지의 모후’ 레지아 모태가 된 본당이기도 하다.

본당 지역의 교회사는 박해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수동본당이 자리한 곳은 조선의 수원도호부 토포청이 있었다. 토포청은 죄인들을 심문하고 형을 집행하던 곳으로, 박해시대 수많은 천주교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교구가 설정되기도 전인 1923년 설립된 본당은 교구 설정 이전에도 수원지역 교회사의 살아있는 현장이었다. 특히 4대 주임 데지레 폴리(한국명 심응영) 신부는 근·현대 신앙의 증인으로 한국교회 차원에서 시복시성이 추진되고 있는 인물이다. 폴리 신부는 소화초등학교 설립자일 뿐 아니라 70명에 불과하던 본당 신자를 2000여 명으로 늘리는 등 수원지역에 신앙을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이다.

본당은 교구 설정 이전부터도 교구 내 교회사 안에서 큰 역할을 해왔다. 교구 설정 이후, 교구 역사 안에서는 왕성한 평신도사도직 활동을 바탕으로 ‘천지의 모후’ 레지아를 탄생시켰다.

레지오마리애는 단원들의 성화를 통해 그리스도 왕국을 발전시킴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활동하는 평신도사도직단체다. 단원들은 성모님 군대로서 레지오마리애 특유의 조직 안에서 활동하면서 사회적 봉사와 복음화 활동에 이바지한다. 우리 교구에서 활동하는 모든 레지오마리애 단원들은 ‘천지의 모후’ 레지아 산하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당은 1959년 레지오마리애 쁘레시디움을 설립했다. 목포에서 레지오마리애 단원으로 활동하던 신자를 통해 본당에 레지오마리애가 소개됐고, 당시 본당 주임신부도 이에 공감해 레지오마리애 쁘레시디움 창설을 위한 움직임이 왕성하게 일어났다. 마침내 그해 4월 상아탑 쁘레시디움이 20여 명의 단원을 중심으로 임시간부를 조직해 활동하다 7월 정식으로 설립됐다. 수원 시내에서는 처음으로 레지오마리애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본당 쁘레시디움이 교구 내 최초의 쁘레시디움인 것은 아니다. 1958년 8월 양지본당에 매괴의 모후 쁘레시디움 설립이 첫 사례다. 하지만 수원 시내에 자리했던 북수동본당의 쁘레시디움은 왕성한 활동을 바탕으로 1년 만에 3개 본당 5개 쁘레시디움을 분가시켰고, 교구에서는 처음으로 꾸리아를 구성했다. 이 꾸리아가 현재의 ‘천지의 모후’ 레지아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