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 제2대리구 도척성당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8-09-04 수정일 2018-09-05 발행일 2018-09-09 제 3111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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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척지역 복음화의 근간 김대건 신부
성인 발자취 기억하는 공간으로 마련

제2대리구 도척성당 전경.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노곡로 63. 푸른 소나무 사이로 자연석에 둘러싸인 둥근 건물이 아담한 모습으로 세워져있다. 지붕 위 십자가 아래로 새하얀 성상이 눈에 들어온다. 갓을 쓰고 영대를 걸치고 한 손에는 십자가를, 그리고 한 손은 신자들을 향한 모습. 성 김대건 신부의 상이다. 바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전교 기념성당’인 제2대리구 도척성당이다.

1966년 미리내성지에서 열린 순교자현양대회를 계기로 순교자 현양운동이 교구 내로 확산됐다. 특히 성 김대건 신부 현양을 위한 노력은 미리내성지뿐 아니라 성인과 관련된 곳으로 확산됐다.

미리내성지 개발에 이어 성인이 유년시절을 보내고, 서품 후 사목활동을 했던 골배마실·은이가 성지로 개발됐다. 후에는 성인이 은이에 정착하기 전에 머물렀다는 한덕골도 순례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됐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의 하나로 1977년 설립된 도척본당도 성인의 발자취를 기념하는 공간을 조성하게 된 것이다.

도척지역과 성인의 인연은 성인이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해 사목활동을 벌이면서 이어진다.

도척지역은 성인의 활동 당시 교통의 요지였다. 오늘날에는 자동차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다소 외진 곳이 됐지만, 걸어서 이동하던 시대에는 이천과 광주, 용인과 양평을 지나는 이들이 반드시 거치는 곳이 이곳 도척지역이었다. 인근 지역을 잇는 지름길이 마치 거미줄처럼 이어져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지방을 걸어 다니며 사목을 펼쳤던 성인에게도 도척지역은 반드시 거쳐 가는 장소였다. 오늘날의 이천, 광주, 용인지역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든 곳, 바로 교우촌들이 많았다. 은이공소에 머물면서 인근 공소를 사목하던 성인은 여러 교우촌을 다니던 중 도척지역에서도 전교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성인의 전교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박해를 이겨내고 많은 공소공동체를 탄생시켰다. 1920년대 초반 기록에 따르면 도척지역에서는 소틔·진말·가래실·노루목·바위성골·텃골·사기소·시어골 등의 공소가 신앙을 이어 가고 있었다. 당시에 공소의 대부분이 신앙 활동과 전교가 활발해, 신자 수 70명이 넘는 공소가 6곳이 넘었다.

도척본당은 도척지역 복음화의 근간이 된 성인을 기리면서 1979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전교 기념성당’이라는 이름으로 본당의 성당을 봉헌했다. 성당은 현재 교구 도보성지순례길인 ‘디딤길’의 순례지로도 등록돼 있다. 단내성가정성지, 양근성지, 은이성지, 천진암성지를 잇는 ‘디딤길’ 여정에서 성당도 함께 순례할 수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