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암 강학회로 한국교회 기틀 세운 형제 이벽 참석 이후 천주교에 마음 기울여 을사박해 후 교회 재건 운동 주도해
권철신(암브로시오), 권일신(프란치스코하비에르) 형제는 천진암 강학회를 통해 한국교회의 기틀을 세운 초기교회 지도자다.
경기도 양평군 양근면 양근리 갈산에서 태어난 권철신·일신 형제는 학식과 덕망으로 명망이 높은 학자였다. 권철신은 성호 이익의 실학적인 학풍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에 정약종, 이승훈, 김원성 등 당대 젊은 선비들이 권철신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권철신이 동생 권일신과 함께 젊은 선비를 모아 유학을 논하던 자리가 천진암 강학회의 시작이었다.권철신은 천진암 강학회를 통해 신앙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교회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이미 저명한 대학자의 위치에 있는데다가 양반 가문의 맏아들이라 활동에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권철신은 주로 교리 공부와 기도생활에 매진했다.
권철신은 박해자들의 모함과 고발에는 개의치 않았지만, 신자들의 배교 소식을 들으면 “저들은 반생의 업적을 무익하게 만들고, 고통으로 의당 받게 될 영광을 잃는다”면서 안타까워하곤 했다. 마침내 권철신은 1801년 신유박해에 체포됐다. 권철신은 형벌을 받으면서도 천주교 교리와 신앙 실천을 변호했다. 결국 같은 해 65세의 나이로 매질을 견디지 못해 순교했다. ※이번 호를 끝으로 ‘교구 순교자를 만나다’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