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순교자를 만나다] 복자 홍필주(필립보)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11-14 수정일 2017-11-14 발행일 2017-11-19 제 3070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의붓어머니 강완숙의 신앙을 모범 삼아 교회에 헌신
주문모 신부의 복사 맡아
어머니 순교 후 사형 당해

복자 홍필주(필립보) 초상화.

홍필주(필립보) 복자는 의붓어머니인 강완숙(골롬바)의 신앙을 따라 주문모(야고보) 신부의 복사를 맡는 등 교회에 헌신하다 목숨으로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다.

복자는 충청도 덕산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1790년 이존창(루도비코)에게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했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깊은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복자가 신앙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복자의 의붓어머니인 강완숙의 영향이 크다. 복자보다 먼저 신앙을 배워 실천하고 있던 강완숙은 복자가 입교하자 교리를 가르치고 신앙생활의 실천을 몸소 보여줬다. 의붓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따르던 복자는 점차 강완숙의 덕행을 모범으로 삼기 시작했다.

하지만 복자의 아버지는 신앙에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천주교를 싫어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1791년 신해박해를 겪게 되자 복자의 아버지는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강완숙을 내쫓았다. 복자는 의붓어머니를 따라 신앙을 지켜나가기로 결심하고 할머니와 어머니와 함께 한양으로 이주했다.

한양으로 이주했을 당시 복자는 아직 스물도 채 되지 않아 교회의 중책을 맡기는 어려운 나이였다. 하지만 1795년 5월 주문모 신부가 자신의 집으로 피신하자 복사로서 적극적으로 교회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또 신자들과 만나면서 홍익만(안토니오)의 딸을 아내로 맞고 함께 교회에 헌신했다.

주문모 신부의 복사(服事)를 맡는 등 교회에 헌신하다 목숨으로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 홍필주(필립보). 탁희성 작

복자는 주문모 신부의 안전을 위해 어머니와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집을 옮겨 다녔다. 또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황사영(알렉산데르) 등의 교회 지도층과 교류하고 신앙을 키워나갔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복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박해자들이 복자의 집에 들이닥쳤다. 주문모 신부의 행방을 쫓던 박해자들은 신부의 거처를 알기 위해 혈안이 돼 복자는 다른 이들보다도 더 가혹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주문모 신부에 관해서도, 다른 신자들에 관해서도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고 형벌을 이겨내긴 했지만 복자의 마음은 결국 약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마침 조사를 받으러 가던 어머니 강완숙의 말을 듣고 복자는 다시 마음을 돌렸다. 강완숙이 복자를 보고 “필립보야, 너는 어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 머리 위에 임하시어 비추고 계심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그릇된 길로 가려고 하느냐?”라고 말하자, 복자는 곧바로 마음을 돌이켜 박해자들을 향해 “절대로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고백했다.

복자는 어머니가 순교하고도 3개월가량을 옥중에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로는 마음이 약해지지도 신앙고백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복자는 사형을 앞두고 최후 진술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이라면 비록 사형을 받을지라도 달게 여기겠다”고 말했다. 마침내 1801년 10월 4일 서소문 밖에서 복자는 27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당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