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선교지에서 온 편지 - 남수단] 피아노 반주를 시작하다

이상권 신부rn
입력일 2017-11-07 수정일 2018-01-22 발행일 2017-11-12 제 3069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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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사람들은 음악과 춤에 참 열정적입니다. 북 하나로 리듬을 만들어내고 그 소리에 몸을 맡깁니다. 그래서일까요, 성가 또한 그 열정이 가득해서 흥이 절로 납니다. 보통 미사 반주는 오르간을 사용하지만, 여기서는 북이 중심입니다. 큰 북과 작은 북이 있고 그 외에 기타 물 건너온(?) 악기들이 그 뒤를 받쳐줍니다. 탬버린과 멜로디언, 트라이앵글과 캐스터네츠 같이 한국 신자분들이 보내주신 악기들입니다. 그리고 빈 깡통에 돌을 넣고 흔들어 소리를 내는 ‘핸드메이드’ 악기도 있습니다. 좀 더 풍요로운 성가 반주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쉐벳성당에서는 이미 건반과 전자 드럼을 가르쳐서 미사 때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강그리알의 한 청년이 쉐벳에서 그 모습을 보고 한 눈에 반했는지, 우리는 피아노 없느냐, 우리도 피아노를 썼으면 좋겠다며 저를 귀찮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미 생각 중에 있었고, 건반을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건반이 왔고, 이제 어떻게 가르쳐야할지가 고민이었습니다. 성당 아이들 중에 항상 멜로디언을 연습하며 실력을 뽐내던 두 아이를 뽑아서 연습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실력을 한 번 확인해보고자 “자, 한 번 쳐봐!” 했더니 컴퓨터 타자를 독수리 타법처럼 한 손으로 멜로디를 콕콕 찍어 치는 겁니다. 사실 악보 없이 가사만 있는 성가책으로 노래에 화음까지 넣어 부르는 것도 신기하지만, 노래만 듣고 멜로디를 치는 그 실력 또한 대단합니다.

아강그리알본당 미사 중 남수단 신자들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성가를 부르고 있다.

신학생 시절 건성으로 배워 ‘도레도레’하는 실력으로 가르치자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곳 학교에는 음악 수업이 없기 때문에 악보를 보는 법이나 음계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습니다. 어린 시절 음악시간의 기억을 더듬어 대략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연습의 기회를 주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어려서 피아노를 좀 배워뒀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큰 요즘입니다.

한 달여 동안의 연습을 거쳐 드디어 지난 주일 미사에서 데뷔를 했습니다. 사실 아직도 오른손으로 멜로디만 치는 수준이지만 디지털 건반의 뛰어난 기능을 활용하니 그럴 듯합니다. 다들 건반의 풍요로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신기해 합니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북이나 기타 악기들이 모두 멈추어버린 것입니다. 모두가 함께 하모니를 이루면 좀 더 아름다울 것 같은데, 건반에 눌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입니다. 앞으로 조금씩 메꿔 나가야할 우리의 부족함입니다.

두 아이를 선발해서 연습을 시키다보니, 피아노에 관심이 있고 그동안 멜로디언으로 연습을 해왔던 나름의 실력자들이 반발을 합니다. 하루 종일 멜로디언과 실로폰을 치는 겁니다. 갑자기 사제관에서 멜로디언과 실로폰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저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어필하는 거지요. 그냥 속으로 웃으며, 다음엔 더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해봅니다.

많은 것이 주어지고 다양한 기회가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큰 행복이라는 것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하고자만 하면 할 수 있기에 소홀하게 대하거나 시큰둥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작은 것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큰 기회입니다.

건반을 통해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더 쥐어 줄 수 있음에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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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신부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