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순교자를 만나다] 복자 정철상 가롤로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10-10 수정일 2017-10-10 발행일 2017-10-15 제 306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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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정약종 옥바라지하며 끝까지 신앙 지켜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 받고 신앙생활
배교 강요에 함구하며 홀로 갇혀 순교

복자 정철상(가롤로) 초상화.

정철상(가롤로) 복자는 박해로 갇힌 부친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옥바라지에 정성으로 다하고, 자신 역시 순교한 신앙선조다.

복자는 경기도 양근 마재의 유명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복자의 집안은 일찍이 신앙을 받아들여 깊은 신심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부친인 복자 정약종은 1801년 순교했고, 양어머니인 성녀 유조이(체칠리아)씨와 이복동생들인 성 정하상(바오로), 성녀 정정혜(엘리사벳)도 1839년에 순교로 믿음을 증거했다.

10살 무렵부터 부친에게 교리를 배운 복자는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하며 영혼을 구하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복자는 교회의 지도자이자 열심한 신앙인이었던 부친의 모습을 모범으로 삼아, 스스로 교리를 지키고 신앙을 실천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자 복자는 스스로 서울로 가 주 신부를 여러 차례 만나고 성사를 받았다. 복자가 주 신부를 방문한 것이 집안에 알려지자 집안사람들은 복자를 송곳으로 찌르면서 주 신부의 거처를 말하고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했지만, 복자는 오히려 자신을 괴롭히는 집안사람들을 설득했다.

1800년 양근 지역에 박해가 일어나자 복자는 부친을 따라 서울로 이주해 더욱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곧이어 일어난 신유박해로 인해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부친과 삼촌 정약용(요한)이 체포됐다.

복자는 지극정성으로 부친과 삼촌의 옥바라지를 했다. 관리들은 복자 역시 신자임을 알고 그의 마음을 돌리려 갖은 방법을 사용했다. 관리들은 옥바라지를 위해 찾아오는 복자를 끊임없이 설득했을 뿐 아니라, 그의 앞에서 부친과 삼촌에게 더욱 혹독한 형벌을 가해 복자가 배교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복자는 흔들림 없이 신앙을 지키며 옥바라지를 이어갔다.

1801년 2월 26일 부친이 순교하던 날 복자는 의금부의 명령으로 체포됐다. 복자는 주 신부의 거처를 대거나 교회의 일을 말하면 풀려날 수도 있었지만, 이미 순교한 신자들의 이름 외에는 교회의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복자 자신은 부친의 옥바라지를 했지만, 자신을 옥바라지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직접 짚신을 만들어야 했지만, 복자는 생전 처음 하는 일을 어려워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달여간의 옥중 생활을 한 복자는 최필제(베드로), 윤운혜(루치아) 등과 함께 사형판결을 받고 1801년 5월 14일 순교했다.

복자의 모습을 본 신자들은 “배교하라는 형벌과 문초에도 그의 신앙은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면서 “오직 부친의 뒤를 따르고 그분과 같이 천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항구한 마음을 드러낼 뿐이었다”고 기억했다.

■ 발자취 만날 수 있는 곳 - 퇴촌성당

퇴촌성당 전경.

복자가 부친 정약종과 거주하던 곳은 경기도 광주 분원(현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으로 현재 성남대리구 퇴촌본당(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광동로 97–9)의 관할지역이다. 퇴촌본당은 복자의 부친 정약종을 현양하는 천진암성지를 가꾼 본당이기도 하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