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 (45) 클라우스 헴멀레 주교 (1)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안식년)
입력일 2016-11-22 수정일 2017-08-29 발행일 2016-11-27 제 3021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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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호흡하며 다양한 사회활동… 신앙인의 모범 보여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에게 기도의 신비에 대해 참으로 귀중한 말씀을 남겼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귀를 당신의 마음에 지니고 계신다.’(시편 주해 148)

하느님의 귀를 우리의 마음에 담아두는 것, 우리의 마음을 그분의 귀에 놓아두는 것. 이것이야말로 기도의 기예다. 이 기예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이 고안한 기예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넣어주셨고,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는 영의 기예이기 때문이다.

미사에서 주례자는 참례하는 신자들에게 성찬례의 성찬기도를 “마음을 드높이”라는 기도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신자들은 “주님께 올립니다”라고 응답한다. 참으로 기도란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고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까? 우리 마음이 지닌 감지력의 폭이라는 것은, 주님께 닿기에는 너무나 좁은 것이 아닐까? 우리의 마음이 가진 활기는 그러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것은 아닐까? 우리의 마음은 사실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절름발이로 만들고, 무거운 짐에 억눌리게 하는 중력에 종속된 것이 아닌가? 무엇이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을 당신께로 들어 높이게 하려는 용기를 주는가?

그분의 귀. 그분이 당신의 귀를 우리에게 향하시기에.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나는 모른다. 사실 모든 것이 내 마음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자, 그러면 ‘나의 마음’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의문들, 불안들, 희망들, 내 안에서 솟아나는 나도 모르는 느낌들인가? 스쳐가면서 소리 없이 흔적을 남겨놓는 수없이 많은 인상들과 예감들인가? 한 사람 안에서 불쑥 수수께끼같이 생겨났다가는 불투명하게 스스로를 숨기는 마음은 과연 그 사람 속에 자신의 근원을 가지고 있을까? 무엇이 나의 마음인가? 어디에 나의 마음이 있는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분은 아신다. 그분의 사랑이 나의 마음을 알기에(요한 21,17). 그분의 귀가 보듬어 주실 때만이 나는 나의 마음을 ‘가진다’. 나의 마음은 그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너를 그분께 내어놓고, 너를 자유로이 그분께 봉헌하고, 그분께 의탁하라!

그러면 너는 그분께 머물 것이며, 그분은 너에게 머무실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귀를 너의 마음에 두신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너의 귀에 두신다는 것, 이로써 너의 귀를 통하여 그분의 마음이 너의 마음 안으로 오신다는 것, 이로써 그분의 마음이 너의 마음이 되신다는 것.

너의 마음에 있는 하느님의 귀-

하느님의 마음에 있는 너의 귀

그러한 기도의 상호교환

오직 기도하는 이만이 하느님을 알게 되며,

오직 기도하는 이만이 인간을 알게 된다.

- 클라우스 헴멀레, ‘너의 마음을 주님의 귀에–기도를 위한 수련(Dein Herz an Gottes Ohr–Einübung ins Gebet)’ 중에서

독일 아헨의 주교였던 클라우스 헴멀레 주교.

아헨대성당 내에 있는 클라우스 헴멀레 주교 기념비.

■ 생활인, 신앙인, 철학자, 신학자, 그리고 사목자 : ‘영성의 자리’에 대해

오늘날 영성이란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해 의미 있는 전망을 얻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솔직하면서도 깊이 있는 관찰과 숙고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영성의 자리’에 대한 섬세하고 다양하면서도 포괄적인 관점을 얻어가는 과정이기도 하겠지요. 먼저 우리는 신앙인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영성의 관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영성이라는 것이 복잡한 현대사회 안에서 생활하는 신앙인들의 삶의 중심에 자리하는 것이 가능한지, 당위에 앞서 자신의 경험에 입각해서 되짚어 보는 것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에서 듣고 배우는 성서와 교의적 가르침들이 나의 영성적 삶에 있어 얼마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고, 나아가 이러한 가르침을 학문적이고 사변적으로 탐구하는 신학이 개인과 공동체의 살아있는 영성을 위해 어떠한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가늠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세상과 인간에 대해, 그리고 신과 정신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철학들이 신앙인의 영성에 있어 어떠한 긍정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새롭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회의 구체적인 활동이며 외적이고 가시적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사목이 신앙인들의 내적인 삶의 중심인 영성과 맺고 있는 관계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이 일상 안에서 살아있으며 통합적인 ‘영성의 자리’를 자신의 삶의 중심에 마련하는 길을 독일 아헨의 주교였던 클라우스 헴멀레(Klaus Hemmerle·1929~1994)의 생애와 사상을 살피면서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클라우스 헴멀레는 깊이 성찰하고 사색하는 삶의 자세를 지녔고, 온유한 성품이었지만 동시에 교회 안에서, 사회를 향해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범이 된 인물입니다. 그는 외적으로 보자면 별다른 풍파가 없었던 조용하고 평탄하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증언하고 그가 남긴 글을 통해 그의 인격과 활동, 사상을 대하면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한 신앙인이 어떻게 자신의 시대와 호흡하면서 깊은 숙고와 내적 체험과 구체적 실천이 함께 하는 진정한 영성을 자신 안에 형성해 갈 수 있는가라는 절실한 질문에 대하여 한 착한 목자가 보여준 힘 있는 답이라 하겠습니다.

클라우스 헴멀레는 신앙인으로서, 철학자로서, 신학자로서, 그리고 사목자이자 주교로서 살아가면서 통합적이고 살아있는 영성의 모범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결실 있는 삶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만남과 구도의 여정은 그의 주옥같은 저서와 글들만큼이나 우리에게 배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독일 주교회의 의장인 칼 레만 추기경은 1994년 선종, 아헨대성당에 안장된 클라우스 헴멀레의 추도미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 아마도 우리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성인과도 같았던 사제이자 주교를 무덤가로 모셔가고 있는 듯합니다.”

1974년 독일 아헨교구의 주교로 임명되면서 클라우스 헴멀레는 요한 복음 17장 21절 말씀을 주교직의 표어로 선택했습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Omnes unum ut mundus credat)”

이 표어대로 목자로서 교회 안에서, 사회와의 만남 속에서 다양성 안의 일치를 추구하는 목자로서의 삶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한 개인이 조용한 실천과 숙고를 통해 통합되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범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안식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