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용인대리구 신갈본당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6-11-22 수정일 2016-11-24 발행일 2016-11-27 제 302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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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촌에서 이어온 신앙… 기도와 봉사로 내실 다져
성당을 지역문화공간으로 개방
교구 첫 ‘새터민 가정체험’ 참여

신갈성당 전경.

용인대리구 신갈본당(주임 이상돈 신부)은 교우촌에서 이어온 신앙을 지역에 전파해온 본당이다.

경기도 용인의 기흥, 수지, 구성 등 본당 인근 지역에는 유서 깊은 교우촌이 많았다. 1888년 교구 첫 본당인 왕림본당이 설립되자, 신갈 지역 교우촌들에도 공소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생겨난 공소는 용인 기흥면 신갈공소와 수지면 원천리공소였다. 이후 1896년 미리내본당이 설립되면서 구성면 죽전리와 상하리에 공소가 생겼다. 1900년 하우현본당이, 1913년 압고지본당이 각각 설립되면서 이 지역에는 10여 개의 공소가 새로 생겨날 정도로 활발한 신앙 활동이 펼쳐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공소들은 인근 공소·본당에 편입되거나 폐지됐고 1970년에는 신갈공소만으로 남게 됐다.

신갈 지역은 1960년대까지 만해도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교통의 요충지가 되면서, 이곳에서도 급격하게 도시화·산업화가 진행됐다. 따라서 신갈 지역은 행정적으로는 용인에 속했지만, 수도권의 위성 도시화돼 수원과 생활권을 공유하게 됐다. 신갈공소 신자들 역시 대부분 수원에 교적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1970년 6월 지동본당이 설립되자 신갈공소는 지동본당에 편입됐다. 지동본당 주임신부들은 교통 면에서 본당 미사에 참례하기 어려운 공소신자들의 상황을 배려, 신갈 지역에 건물을 임대해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교리지도를 했다.

1985년 신갈공소가 있던 기흥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인구 증가와 함께 신자들도 증가하자, 지동본당은 ‘신갈본당창설준비위원회’를 결성해 조립식 임시건물로 성당을 세웠다.

1988년 2월 24일 신갈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됐다. 본당은 신갈 지역을 비롯해 지동·북수동·용인본당의 관할을 나눠받아 1110명의 신자로 구성된 공동체가 새로 탄생했다. 본당은 미사 전후 기도를 정례화하고, 신자재교육을 상설화하고, 혼인갱신식과 연도경연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신자들의 일치와 신앙의 내실을 다졌다. 또 성빈첸시오아바오로회의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에 자선활동을 펼쳐왔다.

신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기존 조립식 성당의 공간이 비좁아짐에 따라 성당 후면을 이층으로 개조하고 199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새 성당 건립 추진사업에 들어갔다. 성당 건립을 위해서도 역시 기도의 끈을 탄탄하게 이어나갔다. 이에 따라 묵주기도 100만 단을 봉헌하는 내적 활동과 성미운동 등의 외적 활동을 함께 진행해 2002년 지금의 성당을 봉헌했다.

본당은 새 성당 건립 이후로도 다양한 사목으로 이목을 끌어왔다. 지역자치단체와 협력해 성당 공간을 지역문화공간으로 개방하기도 하고, 본당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군 복무중인 본당 청년들을 위해 성탄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교구에서 처음 실시한 ‘새터민 가정체험’에도 함께해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본당은 활발한 전교활동을 펼쳐 많은 신자들을 교회 울타리 안에 모아왔다. 또 신자 증가에 따라 수지·죽전·보라동성가정·상하성모세본당 등을 분가시켜왔다. 현재도 5391명의 신자들과 함께 지역 복음화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신갈본당은 2013년 10월 27일 본당 설립 25주년을 맞아 타임캡슐을 성당 제대에 봉인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2010년 1월 새터민 가정체험에 참여한 신갈본당 봉사자와 새터민이 서로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