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안양대리구 과천본당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6-10-12 수정일 2016-10-12 발행일 2016-10-16 제 3015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활발한 소공동체 활동… 과천지역 복음화에 기여
성모영보수녀회 총원 오며 지역 신자 늘어나
신도시 조성되자 비산동본당서 1982년 분가
성당 완공 뒤 신심단체 활성화로 내실 다져

과천성당 전경

과천지역의 첫 본당인 안양대리구 과천본당(주임 박전동 신부)은 신자들의 단합과 일치로 지역 복음화에 매진하는 본당이다.

과천지역에 처음으로 신자가 살기 시작한 것은 1963년경이다. 이후 신자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자 관할 본당인 하우현본당에서 과천지역으로 전교활동을 벌였고, 공소가 설립되면서 공소 신자의 집에서 공소예절을 시작했다. 1967년에는 성모영보수녀회가 과천면 막계리(현 서울대공원 부근)에 이전해 오면서 수녀들의 교리지도에 힘입어 빠른 신자 증가를 보이는 공소로 성장했다. 이후 1974년에는 안양본당, 1978년에는 비산동본당 관할 공소가 됐다. 1979년부터 비산동본당의 20구역으로 편입되면서 공소는 폐쇄됐다.

비산동본당의 구역으로 편입된 것도 잠시, 과천지역에 신자들이 늘어나고 과천신도시 조성이 진행됨에 따라 본당 신설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교구는 1982년 3월 4일 공문을 통해 과천본당을 신설하고 한연흠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발령했다.

2015년 5월 열린 본당의 날 축제 중 단체줄넘기하는 어린이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공소공동체에서 이어 온 본당이라고는 하지만, 공소 성당이 따로 없이 생활했기에 본당은 임시성전조차 없이 본당공동체를 일궈나가기 시작했다. 첫 미사는 간소했다. 본당 신자의 집에서 신자 60여 명과 미사를 봉헌하고 그 집을 임시사제관으로 사용했다. 이에 교구는 성당부지를 매입했고, 미사를 봉헌할 공간이 없었던 본당 신자들은 야외에서나마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됐다. 1982년 12월에는 한 신자의 주택부지에 임시성당으로 사용할 천막을 설치해 비바람을 피해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됐다.

성당은 준비되지 않았지만, 신자들은 빠르게 늘어났다. 과천 신도시에 유입인구가 증가함과 더불어 신자들의 복음 전파에 힘입어 신자수가 빠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본당의 성당건립은 1984년에야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성당부지로 매입한 땅이 용도변경이 불가능해 새로 땅을 구해야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1986년 11월 27일 새 성당이 준공됐다. 성당은 화강석 아치와 종각형태로 주님의 굳건한 성(城)을 상징하는 건물로 설계됐다.

올해 3월 진행된 부활맞이 민속놀이.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그동안 성당 신축에 매진해 오던 본당은 성당 신축과 과천신도시 조성이 마무리됨에따라 사목협의회를 정식으로 편성하고 내적·외적 복음화에 박차를 가했다.

본당은 본당 신자들의 영성계발에 주력하고 소공동체 모임을 강화시켰다. 아울러 본당 산하 신심·사도직단체도 활성화시켜 단체들의 활동을 통해 본당 활성화를 도모했다.

본당의 단합과 일치는 전국적으로 손꼽혔다.

1989년에는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 전국본부 주최로 열린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성체찬미 노래 전국 경연대회 일반부에서 본당 연합성가대가 교구에서 유일하게 참가, 최고 대상인 김수환 추기경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공동체의 활발한 활동은 높은 복음화율로 이어졌다. 1990년대에는 이미 인구대비 신자수가 10%를 넘어섰고, 2015년 현재 14.85%의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교구 인구대비 신자수인 10.98%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