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영성의 뿌리] 하이디 브라우크만 수녀

김진영 기자
입력일 2016-02-03 수정일 2016-02-03 발행일 2016-02-07 제 2981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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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면허 취득하며 의료봉사에 헌신
가톨릭신문 자료 사진
‘프란치스코 전교 봉사 수녀회’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뜻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설립자 하이디 브라우크만(Heide G. Brauckmann) 수녀는 1943년 독일 베스트팔렌에서 3남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하고자 성 골롬반 외방 선교수녀회에 입회한 그는 아프리카 선교를 희망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1966년 한국에 오게 됐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파견이 결정된 후 백과사전을 뒤져 알아본 단편적인 지식이 전부였다.

한국에 도착한 브라우크만 수녀는 성 라자로 마을에서 나환자들과 결핵 환자들을 돌보면서 국내 의료 시설과 의료인의 부족을 절감했다. 그는 아파도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1975년에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내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이어 1982년 1월 강원도 원주에 ‘가톨릭 의원’을 개원해 의료시설이 열악하던 강원도 지역 주민들을 힘껏 도왔다. 그러나 의료 활동 외에도 노인과 장애인, 어린이들에 대한 복지 또한 절실한 상황이었다.

당시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브라우크만 수녀에게 수녀원 설립을 요청하자, 그는 망설이지 않고 함께하기로 했다. 1983년 9월 ‘전교봉사 수녀회’를 창설한 브라우크만 수녀는 수녀회의 진로와 회헌·회칙 마련, 교황청 인준 문제, 남자 수도회 설립, 아프리카 선교 등 수녀회의 미래를 설계하고 실행에 옮겼다. 1988년 9월에는 수녀회 이름을 ‘프란치스코 전교 봉사 수녀회’로 변경했고, 1993년 12월 정식으로 교황청 인준 허가를 받았다. 또 같은 해 사회복지법인 프란치스코 사회복지회를 설립해 어려운 이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다졌다.

브라우크만 수녀는 40여 년이 넘는 수도 생활 전부를 의료 봉사에 헌신한 공로로, 문화방송의 문화시민상(1986년)과 결핵협회의 복십자 대상(1991년), 호암 사회봉사상(2000년)을 받았다.

김진영 기자 (nicola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