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공소의 재발견] (4) 도전공소

이우현 기자
입력일 2013-11-26 수정일 2013-11-26 발행일 2013-12-01 제 287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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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입으로 전해온 이백여년 신앙의 역사
1800년대부터 지역 신앙 못자리
신심 두터운 신자들 왕성한 신앙활동
직접 나무 캐고 흙 발라 공소 건립
본당 연도대회를 대비해 연도를 연습하고 있는 도전공소 신자들.
용인대리구 북여주본당(주임 허현 신부) 소속 ‘도전공소’의 원래 이름은 ‘원심이공소’다. 공소가 위치한 지역의 현재 지명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도전3리’에서 그 이름을 따다가 ‘도전공소’로 부르고 있지만, 마을주민에게 익숙한 이름은 오래 불러 입에 익은 ‘원심동’, ‘원심이’ 이다. 세월 흐름에 따라 소속 교구도 원주-서울-수원으로 변화했다.

■ 도전공소의 처음

‘도전공소’의 역사는 구전(口傳)을 통해서만 전해 내려오고 있다. ‘도전공소’의 역사는 마을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의 기억의 조각을 모아 완성된다.

여주본당 설립 50주년 기념집 ‘남한강의 순례자’에 따르면, 구전을 바탕으로 여주 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1800년대 초부터 시작된 공소의 설립부터이다.

문서 기록을 찾을 수는 없지만, ‘도전공소’는 여주 지역 첫 공소로 알려진 북내면 중암리 ‘완장이공소’와 비슷한 시기 마련됐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한양 서소문 밖 이조 관리였던 정 도마는 동생과 아내, 두 아들 등 가족들을 데리고, 피난을 떠났다가 지금의 원주시 지정면 판대리인 구제에 정착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아들 형제가 헤어지고, 아내가 죽는 등 계속된 탄압에 작은 아들 안토니오만 데리고 ‘원심이’로 향한 정 도마는 한 바위 위에서 묵주신공을 바쳤고, 훗날 사람들은 그 바위를 묵주 줄을 굴렸던 ‘줄 바위’라 이름 붙였다.

세월이 흘러 안토니오는 다시 아들 셋을 뒀는데, 이들 삼형제 중 인품과 덕망을 갖췄다는 둘째 아들 재영(아우구스티노)이 ‘도전공소’ 초대회장으로 추대됐다.

당시 안토니오와 아들 삼형제는 붙잡힐 것을 염려해 성을 정 도마의 외가 전주 이씨 성을 딴 이씨로 바꾸었다.

이 아우구스티노 회장은 두터운 신망으로 주위 사람들의 모범이 됐고. 마을 개간과 농사짓는 법을 보급하기도 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강천면은 ‘원심이’ 개발 공로를 인정, 산을 내주고 9일장을 치르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울러 그는 임종 시 허리에 33마디로 매듭지어진 새끼줄을 두르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마치 예수님의 생애를 상징한다고 일컬어진다. 그는 이 새끼줄이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굴렸던 것으로 보인다.

■ 도전공소의 역사

현재 ‘도전공소’ 신자는 150여 명. 11월 24일 열린 본당 연도대회 연습을 위해 신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손자, 손녀에게 전래동화를 읊어주듯, 공소 식구들은 신앙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도전공소’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88세 김천윤(막달레나) 할머니는 할머니의 할아버지 대부터 이곳 마을에서 살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지금 공소가 있는 자리 말고, 초기 공소는 저 위에 있었지. 남녀가 유별한지라 칸막이로 나눠 앉았어. 공소에 오면 아이들과 공기로 놀고, 그네랑, 널도 뛰고 재미있었지.”

84세 김순종(마리아) 할머니는 17살에 초기 공소에서 혼배성사를 올렸다며 웃음꽃을 피운다.

“옛날에는 자그마한 강당 정도였어. 산에서 호랑이도 내려왔다고 하던데?”

지금은 주변 수도회들이 생기면서 공소예절을 하지 않지만, ‘도전공소’는 신심이 두터운 신자들을 바탕으로 왕성한 전례활동과 신앙활동을 펼쳤던 곳이다.

약초를 팔아 원주, 양평으로 나가 미사를 봉헌했고, 돈을 모으는 것은 물론, 직접 나무를 캐고, 흙을 발라 현 위치에 새 공소(1957년)를 짓기도 했다. 처음 여주성당을 지을 때도, 공소 식구들의 정성이 배어 있다. 배를 타고, 지게를 지어가며 건축에 필요한 물건들을 날았다. 여성들도 치마, 저고리가 더러워지는 줄도 모르고 벽돌을 지고 다녔다. 지금까지 교구 내외 공소 출신 사제, 수도자도 여럿이다.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한 만큼, 공소 식구들의 단합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도 저녁에 모여 망가를 함께하기도 하고, 때로는 떡을 쪄서 나눠먹기도 한다. 공소에 모인 어르신들이 다시금 공소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공소의 역사가 전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인데, 우리가 죽으면 그 누가 알아주겠나. 공소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겠어.”

현재 공소는 매월 첫째 주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도전공소 전경.

이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