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야생화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시골 길을 따라 걸으면 고즈넉한 한옥 공소가 서 있다. 가을 갓 만든 메주의 구수한 향기가 나는 이 공소는 용인대리구 원삼본당 고초골공소다. 공소의 재발견 세 번째 공소로 고초골공소와 만나봤다.
■ 고초골공소의 과거
용인대리구 원삼본당(주임 김종훈 신부) 고초골공소(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학일2리 54-1)가 정확히 언제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옛 문헌에 따르면 박해시대 때부터 이 고초골(현재 지명 학일리)에 교우촌이 형성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병인치명사적」에 따르면 1866년 12월 신(안드레아)와 박(바르바라)가 이 지역에 거주하다 체포된 기록이 있고 또 1867년 2월에는 유군심(치로) 부부와 제수(弟嫂)가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미리내본당 관할 공소로 공소의 신자 통계가 처음 나타난 것은 1900년부터다. 1900년 78명으로 나타나는 공소 신자는 1910년에는 140명, 1920년에는 232명으로 나타나는 등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초골공소의 신자들은 대부분 토박이가 아니다. 미리내, 광주 등지에서 신앙생활을 이어오던 신자들이 생활고 등의 이유로 농토가 넓은 고초골로 이전해 온 것이다. 그래서 당시 고초골의 신자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함께할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영·정조 때의 무신(武臣) 이주국 장군 소유의 건물 중 하나를 해체할 때 자재를 가져와 공소 건물을 지은 것이 지금의 공소 건물이다. 고초골 신자들은 공소 건물이 세워진 지 150년가량 됐을 것으로 여기지만 건물 자재는 더 오래된 것이다.
공소는 그 자체로 신앙공동체의 따뜻한 보금자리였다. 사제도 없고 성당도 없는 이 지역에서 신자들은 매주 이 공소에서 기도했다. 지금은 공소예절이 이뤄지지 않지만 공소 앞 작은 철탑에 달린 종이 그 시절을 상상하게 해준다. 고초골공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원삼본당 김상열(비오) 총회장은 “교통이 좋아져 주일마다 성당을 갈 수 있게 되면서 공소예절을 더이상 하고 있지는 않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공소에서 공소예절을 바쳤다”면서 고초골공소에서 기도 소리가 울려퍼지던 시절을 회상했다.
또 공소공동체는 넓은 공소터를 외지에서 온 가난한 신자들에게 내어 살 수 있게 해줬다. 공소 인근에는 초가 3~4채가 들어서 신자들이 살았다. 미리내성지에 김대건 성인의 시신을 수습한 이민식(빈첸시오)의 후손이기도 한 이선행(요아킴·76)씨는 “선조들은 미리내에 살았지만 박해가 끝나면서 미리내에 많은 사람이 모여 먹고살기 힘들어 고개를 넘어 고초골에 오셨다”면서 “고초골공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공소에서 살았다”고 전했다.
■ 고초골공소의 현재
1980년대에 들어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인근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자 공소공동체는 자연스럽게 본당공동체에 흡수됐다. 공소예절 역시 없다. 하지만 본당공동체의 노력으로 고초골공소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탄생하고 있다.
원삼본당은 2003년 공소 인근 초가들을 리모델링해 ‘고초골 피정의 집’을 만들었다. 식당과 작업실, 숙소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한적한 시골에 황토집을 그대로 살린 숙소는 복잡한 도시에서 떠나 세상을 잊을 수 있는 공간이다. 또 공소 건물은 그대로 보존해 선조들의 신앙생활 자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피정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가 됐다.
공소 뒤쪽으로 돌아가면 수많은 메주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원삼본당 공동체가 손수 만든 메주들이다. 본당 새 성전 건축기금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이 메주들을 만든 지도 벌써 10년. 10년의 노하우에 고초골공소에서 만든 메주로 만든 장맛이 일품이라는 평이 자자하다. 지난해에는 공소에 메주건조장도 설치했다. 해마다 11월이면 갓 만든 메주의 구수한 내음을 만날 수 있다.
자가용으로 공소를 찾는 경우 ‘고초골 피정의 집’을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고 주차장에도 여유가 있어 찾기에 좋다. 대중교통은 용인버스터미널에서 약 2시간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11-1번 버스를 타고 ‘학일교차로 정류장’에서 내려 천변을 따라 약 200m 걸으면 공소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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