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공소의 재발견] (1) 산북공소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3-03-26 수정일 2013-03-26 발행일 2013-03-31 제 2839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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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한 친교 이루며 즐거운 신앙생활 누려
곤지암·양평·여주성당 등으로 흩어져 신앙생활 했던 신자들
전임 교구장 최덕기 주교와 함께 공동체 활동 활발히 펼쳐
공소에는 수많은 사연이 얽혀있다.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교리문답을 가르치던 할아버지 사제의 모습이, 마당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의 웃음이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는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교구 구석구석의 작은 역사들을 찾고, 그 이야기들을 복원하기 위해 교구 내 잊혀져가는 공소들을 탐방한다.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신앙선조들의 이야기는 ‘공소의 재발견’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 산북공소의 과거

전임 교구장 최덕기 주교가 상주한다는 점에서 산북공소(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상품리 129)는 교구 내 특별한 공소로 자리한다. 현재는 현대적 외관을 자랑하지만 1983년 6월 공소가 시작된 이래 4번째로 지어진 건물이다.

당시 천진암본당은 김 마리아씨를 선교사로 파견했는데, 그와 신자 5명으로 이뤄진 공동체가 산북면 하품리에 ‘녹암공소’라는 이름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녹암(鹿庵)은 한국교회 창설주역 권철신의 호다. 권철신이 강학회를 열었던 주어사 터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장소가 처음 공소의 이름을 짓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용담리와 백자리 등을 거쳐 조립식 성당을 신자들의 힘으로 신축했고, 이후 퇴촌본당 산북공소로 명칭을 바꿔 2009년 10월 현재 위치한 상품리 현지에서 기공식을 열었던 것이다.

양평-곤지암(약 25km) 가운데 성당이 없어 산북공소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곤지암과 양평, 여주성당 등으로 흩어져 신앙생활을 했던 신자들은 이제 산북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신자 수 250여 명으로 늘어날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산북공소는 1983년 6월 공소가 시작된 이래 4번째로 지어진 건물로 현대적 외관을 자랑한다.
■ 산북공소의 현재

2009년 최덕기 주교가 교구장직을 사임하면서 2010년 4월, 산북공소도 최 주교를 담당으로 하는 공소 봉헌식을 가졌다. 이후 공소공동체는 전임 교구장과 함께, 조금은 특별하지만 즐겁고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성경공부(어른 2, 어린이1), 레지오(어른 3, 청소년1), 소공동체 모임(10개반) 등으로 단체를 조직하고 활발한 공동체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또 최 주교와 함께 전신자가 쌍화차 작업에 뛰어들어 성당건립기금을 갚아나가며 친교의 기쁨도 키워갔다.

최 주교는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할 일이 많이 생겼고, 이는 은퇴주교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며 “홀로 영적생활을 이어가기보다 교우들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신자들도 냉담신자들을 찾아 최 주교와 함께 가정방문을 다니며 이웃들을 살뜰히 챙기고 있고, 이제는 더 큰 마음으로 다문화가정을 찾아 도움을 주기도 한다. 4월 14일 산북공소 설립 3주년 행사를 통해서도 아나바다 장터와 자선공연 등을 열어 인근 필리핀 결혼이민여성들에게 고향을 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줄 계획이다.

끈끈한 친교를 이루며 전원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산북공소 공동체, 공동체의 비옥한 텃밭은 신자들이 그 위에 싹을 틔우고, 신앙의 열매를 맺도록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최초 하품리 녹암공소.
최초 공소 선교자 故 김 마리아씨.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