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성찬경의 반투명 인생노트 (36) 시간 수상(隨想)

성찬경(시인·예술원 회원)
입력일 2012-01-10 수정일 2012-01-10 발행일 2012-01-15 제 277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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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그릇에 어떤 삶을 담을까? 인간이 가진 ‘우리의 숙명’이다
Do not squander time life consists of. 삶의 질료(質料)인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어딘가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나는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가벼운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한숨을 쉰다. 내가 보낸 시간 중 아마 3분의 2 정도는 내가 낭비한 시간일 것이라는 자괴감(自塊感)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을 낭비만 해온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에 열중하며 보낸 시간도 꽤 있었다. 이러한 시간이 그나마 사막에서의 오아시스처럼 내게는 지금 구원의 빛이다. 열중! 그렇다. 인생을 허무에서 구원하는 오직 하나의 방법이 열중이다. 무엇인가에 열중하는 것처럼 보람 있고 마음이 놓이는 것이 없다. 열중의 추억만큼 감미로운 추억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여기에서 생각을 시간이란 주제에 모으기로 정하고 생각의 흐름에 따라 펜을 움직이기로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는 시간이다.’ 내가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여러 차례 우려먹은 괴테의 명언이다. 참으로 현자(賢者)다운 말이다. 이 말에서 첫째로 취할 점은 시간과 공간을 통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과 공간을 통합한 4차원의 좌표(座標)의 개념이 이 말 안에 들어 있다. 이리하여 괴테는 아인슈타인의 시간 공간 개념을 앞지르는 선구자가 됐다. 구조적(構造的)으로 까다롭고 신비로운 시간에 간명하고 논리적인 공간개념을 대입(代入)시킴으로써 시간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준다. 시간이라고 하는 흘러가는 장소에서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여기에서 나는 시간에 대한 작은 발견 하나를 얻는다. 가능성(可能性)은 미래에 있으며 과거에 있지 않다. 그리고 가능성의 크기는 미래의 시간의 양(量)에 비례한다. 앞으로의 10년의 세월과 앞으로 10분의 시간은 품고 있는 가능성에서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인생에서 가능성의 최대치(最大値)는 사람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보름달이 달의 제일 밝은 국면인 것처럼 갓난아기가 그 아기 가능성의 최대치를 지닌다. 갓난아기를 바라보며 우리가 숙연해지는 것은 아마 이 무한한 가능성에 고개 숙이는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과거로 흘러드는 순간 가능성은 마치 점토가 굳는 것처럼 제로(0)가 된다. 사건은 결판이 났다. 당락이 드러났다. 과거는 아무리 긴 시간이 모여도 사건의 퇴적(堆積)이 있을 뿐 가능성이 증대하지는 않는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를 회상하면서 ‘이기는 전투였다!’ 하고 중얼거렸다지만 승리는 가상(假想)의 세계에서 놀 뿐 현실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사람이 숨을 거두는 순간은 모든 가능성이 소멸하여 제로(0)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끝났다. 크건 작건 거두어들인 결실이 세잔느의 사과 그림처럼 영원히 열려 있을 뿐이다. 영원한 휴식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고요와 평화다. 이 고요와 평화를 맞이하기 위해 사람은 그토록 많은 피땀을 흘린 것이다. 슬프고도 엄숙한 순간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차례 온 시간이 나의 수명(壽命)이다. 나의 수명은 나의 일생을 담는 나의 그릇이다.

나의 ‘그릇’에 나는 어떠한 삶을 담을 것인가. 나의 그릇에 담는 나의 삶의 모양과 내용이 나의 ‘인생의 예술’이라고 나는 늘 주장해 왔다. 이 과업은 우리의 숙명이다. 절대 아무도 이 일을 피할 수는 없다. 도주(逃走)할 수 없다. 만약에 이 일이 (인생의 예술을 만드는 일이) 싫어서 도주한다면, 도주가 그대로 인생의 예술의 작품내용이 될 뿐이다.

‘헛되도다!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 1-2) 인생의 본질을 이 말보다 더 잘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하나 헛된 인생이 하기에 따라서는 아름다운 비극적 작품으로 전환될 수는 있다. 여기에 인생의 묘리(妙理)가 있다. 그리고 이 묘리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것이 시간이다. 시간이란 참으로 신비스런 그릇이다.

성찬경(시인·예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