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3년 수원교구 설정 50주년 특집] 초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에게 듣는다 (10) 미리내성지에서 맞은 교구 첫 성탄

정리 이우현 기자
입력일 2011-02-09 수정일 2011-02-09 발행일 2011-02-13 제 273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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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신심 교구에 뿌리내리기를…
교구장으로서 교구를 완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본당 사목방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교구장 직무를 시작하자마자 교구 내 여러 본당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지요.

당시 수원교구 관할에 있던 24개 본당 대부분은 내가 전혀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어요. 이천본당과 장호원본당(현재 청주교구 감곡본당)만 1950년 사제서품 직후 노기남 주교님을 수행하면서 가본 적이 있었거든요.

본당 관련 이야기를 하다 보니 미리내성지(본당)에서 보낸 교구 첫 성탄대축일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수원교구는 곳곳이 초창기 교회 ‘순교 선열들’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교구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미리내성지는 당시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성지이거니와 교구민들의 순교신심을 고취시키기에도 충분한 성지였지요.

성탄전야미사와 성탄대축일 당일 미사를 모두 미리내성지에서 봉헌했어요. 성지 인근 본당 신자들도 많이 오셨지요.

그날 이후 미리내성지에서 순교자현양대회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더 많은 이들의 신앙 안에 순교신심이 뿌리 내리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지요. 그 다음해인 1964년부터 매년 한국순교복자대축일에 미리내성지에서 순교자현양대회를 열게 됐어요. 예전에는 길이 좁고 험해서 차들이 다니기도 힘들었지만 많은 이들이 참석했어요. 이 순교자현양대회가 지속돼 수원교구의 전통으로 자리 잡길 바랐지요.

미리내성지는 한국교회 첫 사제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를 모신 묘소이지만 당시 성지 시설로는 경당 하나가 있을 뿐이었어요. 순교자현양대회 때는 경당부터 묘소까지 행렬이 길게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데, 중간에 조그마한 개울이 하나 있어서 행렬이 자꾸 끊어지는 어려움도 있었지요.

또 경당이 작아서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는 야외에서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을 감수하며 미사를 봉헌해야 했지요. 그래도 순교선열을 닮아가려는 ‘신자들의 열정’은 항상 뜨거웠어요.

1965년 미리내성지를 찾은 성지순례객 행렬이 경당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이우현 기자 (helen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