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3년 수원교구 설정 50주년 특집] 초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에게 듣는다 (8) 교구장 착좌식 (하)

정리 이우현 기자
입력일 2011-01-19 수정일 2011-01-19 발행일 2011-01-23 제 273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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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예절 복장 일부 비싸 빌려 쓰기도
교구 설정을 위해서 외적으로 특별히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교황님의 교구 설정 칙서를 통해서 교구 경계는 어디까지고, 주교좌본당이 어디인지 정해놓은 것뿐이지요.

고등동성당에서 조그만 길을 건너 집 한 채가 있었는데, 그곳에 수녀님들(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이 살고 계셨죠. 그때도 장금구 신부님(당시 북수동본당 주임)과 연락을 계속 취하며 준비를 해왔는데, 신부님은 고등동성당 안에 수녀님들을 위한 방을 새로 만들고, 수녀님들이 살던 집을 교구청 겸 주교관으로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렇게 해서 결국 착좌식 후부터 그곳에서 살게 된 거예요.

이처럼 장 신부님께서 착좌식 전부터 많은 도움을 주셨기에, 나를 도와 수원교구 정착에 앞장서줄 인물로 장 신부님이 적당하다는 판단이 섰어요. 착좌식 때 신부님을 총대리 신부로 임명했죠. 착좌식을 마친 후 축하연에서 라틴어로 임명장을 만들어 발표했어요.

윤공희 대주교 수원교구장 시절.
수원교구가 서울대교구에서 분리돼 나오게 되니 서울대교구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죠.

지금 와 생각해보니 착좌식은 단순했어요. 법적으로 교황님의 칙서를 발표하는 것 외에는 기도하고, 성가 부르고, 주교좌에 착좌하는 예식 하나가 포함됐죠. 오히려 예식보다는 주교예절 복장이 참 복잡했어요. 붉은 수단 뒤에 긴 꼬리(라틴어 ‘까우다’)가 있었는데, 너무 비싸 구할 수 없어서 노기남 대주교님 것을 잠시 빌려 사용했지요.

그 다음 공의회 갈 때마다 새로 만들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비쌌어요. 500달러나 했으니 살 수가 없었죠. 하지만 공의회 이후에는 그 꼬리가 없어졌기에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됐어요.

축하연 장소를 구하기 위해 애썼던 일도 생각이 납니다. 교구청에는 잔치를 할 수 있는 마땅한 장소가 없었어요. 그래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강당을 빌려 쓰게 됐죠.

착좌식은 했지만 재정적으로는 준비된 바가 없어 어려움도 있었어요. 그때부터 장부를 쓰기 시작했죠. 착좌식 예물부터 하나씩 적어나갔어요. ‘수원교구 재정의 첫 걸음’이 시작된 것이지요.

▶다음호에 계속

정리 이우현 기자 (helen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