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마중물] 교구 시각장애인선교회 회원들의 사물놀이 연습 현장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10-04-13 수정일 2010-04-13 발행일 2010-04-18 제 2693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끼며 연주”
어려운 여건에도 자신감·열정으로 활동
교구 장애인의 날 공연 준비에 구슬땀
시각장애인선교회 회원들이 매주 금요일 오후 교구청 지하 회의실에서 장단에 맞춰 장구며 북, 꽹과리를 연주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교구청을 방문하면, 장구며 북, 꽹과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도대체 누가 이 시간에 우리 장단을 연주할까. 소리의 진원지는 교구청 지하 회의실이다.

나이 지긋한 중년 여성들이 회의실 바닥에 둘러앉았다. 언뜻 보기에도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동작들. 짙은 안경을 낀 신자도 있고 소리를 음미하듯 눈을 질끈 감은 채 북을 두드리는 손에만 열중하는 이도 있다.

자리를 펴고 앉은 6명의 신자들은 모두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데 어떻게 연주를 할 수 있을까.

그냥 자리에 서서 바라보며 듣는 것만으로도 의문이 풀린다. 상쇠의 인도에 따라 장단을 맞춘다. 악보도 볼 필요 없다. 북과 장구를 칠 수 있는 손이 있고 장단을 맞추는 귀가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40분에 걸친 연습이 끝났다. 악보를 볼 수 없기에 오로지 머릿속에 간직한 가락을 되뇌이고 다른 이의 소리에 맞추느라 청각에 너무나 의존한 탓에 다들 이마에 땀이 맺힌다. 유인순(마리스텔라)씨가 낯선 이의 목소리를 따라 자리를 옮겨 앉아 말문을 연다.

“장애를 이유로 도움만 받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죠. 각자 주머니 돈 털어 장구며 북을 사서 모임을 시작한 게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버렸네요.”

시각장애인선교회 사물놀이 모임은 지난 1999년 음악을 좋아하는 몇몇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했다. ‘무슨 사물놀이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기대는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연습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공동묘지를 찾았던 적도 있다. 여름에는 모기에 겨울에는 추위와 싸우며 북을 두드렸다.

공동묘지가 여의치 않을 때는 빈 공소를 수소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노력만큼 녹록지 않았다. 연습 환경도 좋지 않은 데다 대부분 생계 챙기기에도 바쁜 형편이었다. 공연 한번 근사하게 하자는 애초 다짐도 흐지부지 돼 버렸다. 그렇게 연습도 중단됐다.

2007년 10월. 사물놀이 모임은 김용철(야고보)씨가 지도자로 나서며 다시 시작됐다.

한연심(루이제·조원동본당)씨와 장말명(프란체스카)씨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재능을 봉헌하겠다며 힘을 보탰다. 김씨는 “모두가 하고자 하는 열의가 남달라서 매번 모임 때마다 뿌듯하다”고 전한다.

악보를 보며 가르쳐야 더 다양한 가락을 칠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북과 장구를 치는 동작 하나하나를 말로 설명해야 하기에 힘도 더 든다. 그래도 회원들의 진지한 자세를 볼 때마다 힘을 낸다.

한연심씨도 “중간에 모임이 해체됐을 때는 (이분들이) 상처를 많이 받으셨다”며 “유일한 취미이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채워주는 모임에서 봉사할 수 있어 뜻 깊다”고 전한다.

회원들이 휴식을 마치고 다시 장구 앞에 앉았다. 회원 한 명 한 명 번갈아가며 방금 연습했던 가락을 홀로 연주한다. 악보를 보고 지도자의 손짓 하나하나를 새기며 북과 장구와 꽹과리를 치는 비장애인과는 분명 비교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질 않는다.

‘어떻게 몇 번을 연습해도 그걸 못 쳐요’라는 봉사자의 농 섞인 핀잔에도 함박웃음을 짓는 것은,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도 몸과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매일이다시피 밤과 낮이 바뀌는 피곤한 일을 하면서도, 두 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교구청에 오는 힘든 길을 반복하면서도 이 자리에 앉는 것도 오직 그 이유다.

시각장애인선교회 사물놀이 모임은 예년처럼 올해도 교구 장애인의 날 행사인 빈자리 축제에서 신명나는 사물놀이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 교구 사회복지회 장애인선교회

서로의 처지 보듬고 나누며 하느님 품에서 충실히 생활

사회복지회 산하 4개 단체 운영

교구민 관심과 봉사자 참여 절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는 그저 하나의 작은 불편함일 뿐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함께 손을 맞잡을 것을 다짐하는 날이다.

교구 사회복지회 산하 ‘장애인선교회’에는 농아(청각장애)선교회, 시각장애인선교회, 지체장애인 선교회와 지적발달부모회 등 4개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1985년 철산본당에서 ‘샘물회’라는 명칭으로 구성된 것을 모태로 하는 농아선교회는 1988년 9월 정식 창립됐으며 현재 수원 사랑자리, 안양 다솜회, 철산 샘물회, 성남 한빛회, 여주 하늘빛, 안산 소망회 등 5개 지부 7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매주 지부별로 미사를 봉헌하며 매월 둘째 주일에는 합동월례미사를 봉헌한다. 일 년에 두 차례 정도 수화교실도 연다.

1989년 6월 창립한 시각장애인선교회는 40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시각장애인과 봉사자로 구성된 레지오 마리애는 매주 수요일 교구청에서 회합하며 회합 후에는 성경공부도 한다. 매주 금요일에는 사물놀이 모임을 갖는다. 매일미사에 담긴 독서와 복음을 녹음한 ‘소리월보’도 제작해 시각장애인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1989년 창립한 지체장애인선교회는 4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매주 목요일 레지오 마리애 회합을 갖는다. 지적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를 위한 지적발달부모회는 매월 넷째 주일 교구청에서 자녀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

미사 후에는 사회적응훈련 일환으로 자녀들과 야외행사도 갖는다. 지적발달부모회는 장애 자녀를 보살피며 겪는 어려움을 나누고 기도하는 모임도 매월 한 차례씩 마련하고 있다.

각 선교회 회원 숫자에서도 볼 수 있듯 장애인선교회의 활동은 교구 교세에 비해 미약한 형편이다. 교구청이 자리한 수원이나 가톨릭복지회관이 있는 안양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그나마 나은 편. 그 외 지역 거주 장애인들은 미사나 기도 모임 등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많다.

장애인복지관이나 장애인시설을 통한 복지서비스는 받을 수 있다 해도 장애인들이 서로의 처지를 보듬고 용기를 얻으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사자 수요가 절대적으로 많은 특성이 있음에도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인식 탓에 봉사자가 여전히 부족한 것도 교구 장애인사목 활성화의 걸림돌이다.

장애인선교회 담당 이 마리나 수녀는 “장애인선교회 활동에 많은 신자들도 관심을 갖고 봉사에 나서며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한다”며 “선교회의 활동이 널리 알려져 보다 많은 장애인 형제자매들이 하느님 품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문의 031-441-5835~6 교구 장애인선교회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