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수단을 입으며] 김우정 신부 - 인내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매교동본당 주임
입력일 2009-07-21 수정일 2009-07-21 발행일 2009-07-26 제 265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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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정 신부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질문 중 하나는 “힘드시죠?” 혹은 “바쁘시죠” 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네”라고 답하기를 굉장히 쑥스러워 한다. 내가 원해서 사제가 되었고(물론 하느님의 이끌어 주심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사제로 살고 있는데, 힘든 것과 바쁜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따금 바쁘기는 하다. 하지만 그 바쁨이 결코 힘든 것이 되지 않는 이유는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사제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도 정말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병자 영성체 때이다. 귀찮거나 어렵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그날이 되면 이상스럽게도 평소보다 더 머뭇거리게 된다. 이유를 말하자면, 방문한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나 짧은데도 그 때마다 너무나 고마워하시는 분들의 모습 때문이다.

사실 사제가 어려운 사정에 있는 사람, 고통 받는 사람, 병든 사람들을 방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번 겨우 시간을 내면서 너무나 짧은 시간을 머문다는 것이 그렇게 죄송할 수가 없다.

물론 집집마다 환경이 다르고 때로는 시큰둥한 모습으로 문을 열어주거나 아예 문을 닫고 숨어버리는 분들도 계시고, 때로는 꺼림칙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방문하는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이따금 나를 반기지 않는 곳에서는 그다지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는 심리를 발견하거나 빨리 다음 집으로 가야한다는 다급하고 귀찮은 마음을 발견할 때는 더욱 죄송스러워진다.

그럼에도 주님을 모시는 분들은 나를 너무나 반긴다. 찬 바닥에 앉지 않도록 하려고 소박한 방석이라도 준비해주시며 굳이 거기에 앉아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시고, 때로는 잠깐 뭐라도 들고 가시라며 힘든 몸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저것 꺼내시는 모습을 보면 더욱 마음이 아리다. 이분들에게 사제의 방문은 그냥 한달에 한 번이 아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싶으신 것이다. 때문에 짧은 시간을 머물면서도 다음 집으로 가기 위해 옮기는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질 않는다.

이런 모습들을 접하면서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집전하고 기도를 하는 내 모습을 비교해 보게 된다. 과연 내가 저분들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집전하는가? 저렇게 온 마음을 다해 한 가지라도 주님을 위해 무언가 하려고 노력했는가? 오히려 감사하기 보다는 귀찮아하거나 게으른 마음으로 직무에 임한 적이 더 많지 않았는가? 나는 사람들 앞에 사제로 서 있으면서 얼마만큼 진심을 가지고 주님을 모시고 사람들을 대했을까?

이따금 실망하는 이들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함께 믿는 이들에게 실망하고, 인정받지 못했음을 한탄하면서 주님과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들어온다.

그 와중에 나 자신도 그 분위기에 휩쓸릴 때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분명 가장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할 사람은 늘 나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후회하게 된다. “조금만 더 들어 보았다면” “조금 더 참았다면” “조금 더 감사할 수 있었다면” “조금만 더 사랑할 수 있었다면”

아직도 사랑할 기회는 많다. 그러나 과연 나는 그 기회를 얼마나 활용하고 있을까? 오늘도 내일도 나는 사제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수단을 입고 단추를 하나씩 채워가며 많은 것을 생각하고 기억하고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핑계는 필요치 않다. 주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기도하셨으며 용서하셨으니. 그래서 요즘은 더욱 자주 청하게 된다. 조금 더 감사드릴 수 있기를, 조금 더 귀 기울일 수 있기를, 조금 더 인내할 기회를 주실 수 있기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매교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