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수단을 입으며] 조영준 신부 - 신부님 왜 여기에 계세요?

조영준 신부·버드내본당 주임
입력일 2009-07-07 수정일 2009-07-07 발행일 2009-07-12 제 265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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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 신부
어떤 교우가 용산 참사 현장을 지키고 있는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들은 왜 여기에 계세요?” 나는 왜 여기에 앉아 있는가? 도청 앞에서 노숙을 할 때에도 이런 질문을 동료와 신자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골프장을 건설하고 있는 곳이 어디 여기뿐인가? 그렇다면 골프장을 짓는 곳마다 반대하고 다닐 것인가? 철거민이 여기 용산뿐인가?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정부에서 적극 나서달라고 3개 종단이 함께 기자회견을 한 현장에서도 신부들은 관여하지 말라고 사측으로부터 똑같은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정말 이런 곳들은 내가 있을 곳이 못되는가?

그래서 내 자신에게 물었다. 신부가 왜 여기에 있는가를.

문득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루카 10, 29-37)가 떠오른다. 예리고로 내려가는 한 사람. 가다가 그만 강도를 만나 죽을 위험에 처하고 마는 한 사람. 그곳은 많은 행인이 다니는 곳이 아니었지만 아주 인적이 없는 곳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이야기에서는 몇 사람이 지나가는 인물로 등장한 곳이었다. 그 중 레위 사람 하나가 지나가다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본다. 당연히 위험에 처한 동족이 있으니 그를 구해야 했지만, 그러나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을 그냥 두고 지나갔다. 그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이런 생각은 아니었을까?

“율법에서 이런 경우 뭐라고 했지? 에이, 나 말고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얼마 후 사제 한 사람도 같은 길을 지나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다. 적어도 사제라면 도와주겠지? 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라고 가르치는 분이니까? 그런데 그 사제도 그냥 지나쳐 갔다. 사제는 지나치며 “나는 저 사람보다 더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러 가야돼”라고 판단했을까?

이제 강도 만난 사람은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가?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마지막 등장인물이 나타난다.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하필 마지막 등장인물은 공교롭게도 강도 만난 사람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사마리아인이었다. 행여 더 괴롭히지나 않으면 다행이라 여기며 큰 기대나 희망을 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부축해 상태를 살펴보고는 치료를 위해 서둘러 그를 데리고 여관으로 가 치료를 부탁하며 당부까지 남긴다.

전혀 뜻밖의 결론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 같지만 예수님은 여기서 끝내지 않으시고 더 나아가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냐?”라는 질문을 던지신다. 그러자 율법교사는 주저 없이 “사마리아 사람입니다”라고 올바르고 정확하게 대답한다. 사실 나라도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며, 또한 지금까지 그렇게 대답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꺼내신 예수님의 진짜 의도는 질문에 대한 답에 있지 않았다. 예수님은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는 한마디로 당신이 의도하신 정답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가는 길에서 강도를 만나 도움을 청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까지 사제로서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강도 만난(?)사람들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던가? 나는 그 때마다 ‘다음에’라고 했거나, 혹 ‘철거민이 당신들뿐인가? 해고 노동자가 저들뿐인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어디 하나 둘인가?’하고 외면하며 피해서 지나치진 않았었던가? 그들에 대한 나의 무관심과 핑계 때문에 살겠다고 망루에 올라갔다 주검이 되어버린 저 다섯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제 더 이상 무관심과 자기합리화를 위한 핑계를 대며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기로 했다. 딱히 무엇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 자리에 있기로 했다.

남편을 잃고 슬픔에 잠겨있는 미망인들을 위해 적절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폭도로 낙인 찍혀 5개월이 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유가족들을 위해 그저 함께 있기만이라도 해야 하겠기에 이 자리에 있기로 했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지 않으면 앞으로도 함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과 위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곁에 있기 위해 지금 용산에 있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뒤에 스승 예수님께서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고 말씀하셨기에….

조영준 신부·버드내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