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샤르트르는 “문밖에만 나오면 세상이 벽이다”라고 말했다. 벽을 지나 문 밖으로 나왔는데 또 벽을 느낀 것이다. 세상은 샤르트르가 말했던 것처럼 정말 애정과 따뜻함이 사라진 곳일까. 세상은 진정 벽인가. 분명히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실 세상은 이성으로만 바라보면 샤르트르가 보았던 것처럼 가슴 답답한 곳일 수 있다. 하지만 샤르트르에게는 영적인 눈이 없었다. 오직 인간의 눈으로만 세상을 본 것이다. 삶의 형성의 장에서 동·서·남·북 사방의 실존적 상황을 넓고 예리하게 본 것 같으나, 사방의 중심에 계신 하느님(형성하는 신적 신비)을 못 느끼고, 신적 신비로부터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형성적 에너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샤르트르의 이같은 표현은 반형성적인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세상은 벽으로 가득찬, 가슴 답답한 그런 곳이 아니다.
은총과 더불어 나아가면 세상에는 막힌 벽이 보이지 않고 초월적 벽만이 보이게 된다. 인생은 은총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그 은총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영신 수련을 해 나갈 것이다.
은총만이 지속적인 변화를,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의 초형성을 이뤄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인간 능력만 가지고 어떤 변화를 꾀하려 한다면 한계가 있다. 인간 능력 자체가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총은 무한대이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가장 깊은 자아의 초형성, 하느님 뜻 안에서 변화를 가능케 한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초월적으로 변화시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분열이 있을 수 없다.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그 순간, 우리는 이제부터 내 힘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이것이 신앙의 출발이다.
우리는 우선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안에서 작용될 수 있는 여력을 창출해 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의 형태를 가려버리는 반 형성적인 성향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이를 떨쳐 버릴 수 있도록 하는 힘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반 형성적인 것들을 하느님의 저 정화하는 은총에 종속시키지 않는 한, 오만 형태가 우리의 삶과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자만과 오만이 은총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다. 실제로 우리 안에도 반 형성적인 요소들이 얼마든지 있다. 기분이 조금만 나빠도 주위 사람들에게 쉽게 화를 낸다. 남이 잘되면 시기심이 발동한다. 나 혼자 힘으로 세상 모든 일들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좌절과 고통의 결과만 낳는다. 이러한 것들이 정화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태로 살아갈 수 없다. 이를 정화시키는 것이 바로 은총이다.
은총과 더불어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원천이자 중심이신 ‘미리 형성하고 계속 형성하는 신적 신비’(하느님)에로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의 형성의 장의 모든 영역에서 성령에 의해 신적으로 드러내어지는 것들에 부합하도록 하는, 그 순명 요청에 종의 자세로 귀 기울이는 것이다.
넓은 세계를 통해서 다가오는 여러 가지 지시들이 바로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부름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서 자유롭고도 기쁨에 차서 ‘예’라고 응답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모든 실존 상황에서,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 안에서 신비를 비추어 내는데 우리 자신을 투신하는 것이다. 결국 하느님의 뜻을 찾은 사람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분의 삶의 신비를 드러내게 된다. 하느님을 드러내게 된다.
은총과 협력을 할 때 이러한 협력은 우리를 영원한 음악과 조화를 이루는 화음을 이루는 상태로 이끌어 간다. 은총은 우리 삶을 참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가진 교향악으로 만드는 지휘자다. 은총은 우리로 하여금 영을 새롭게 하고, 생기나게 하고, 회복시켜준다. 은총은 또 생명을 가져다 주는 물을 깊이 마실 수 있게 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말씀과 삶의 모범을 통하여 은총과 더불어 나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삼년동안 살면서 가르쳐 주신 것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오는 은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은총과 더불어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행복, 그리스도의 하느님 나라에 동참할 수 있다.
교리/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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