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수단을 입으며] 박경환 신부 - 예수님의 마음을 지닌 사제

박경환 신부·상현동본당 보좌
입력일 2009-06-23 수정일 2009-06-23 발행일 2009-06-28 제 265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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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환 신부
-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어느 날 비가 많이 내리는 토요일 오후. 그날따라 비도 오고 피곤도 하고 미사에 가서 어린이들을 만나는 게 다른 때와 다르게 그다지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 그런 날.

‘오늘은 비가 오는데 아이들이 적게 오겠지…’

하지만 상현동 천막 성당 안에는 아이들의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고 어린이 미사는 시작됐다. 나름 열심히 정성껏 미사를 봉헌한 후 지친 몸과 마음으로 웅성웅성 모여 있는 아이들 곁을 지나갔다.

‘신부님, 오늘 어디 아프세요?’ 깜작 놀랐다. 한 아이의 이 말을 들으며,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음 속엔 알 수 없는 미묘함이 일며 얼떨결에 얼버무렸다. “아니”라고. ‘신부님 아파 보여요.”

그 아이의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단을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신부다. 얼마나 오랜 시간 사제직을 준비해 오고, 또 얼마나 큰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거룩한 사제직으로의 부름에 응답했지만, 이렇게 빨리 자주 지치는 내 마음의 얇은 열정에 정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신학생 때 본당신부님께서 은퇴하셔서, 은퇴미사에 참례한 적이 있는데 그날 정말 큰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 신부님은 은퇴미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처럼 신자들에게 잘 하는 사제가 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신부님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따라 사셨던 한사제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신자들에게 잘 하는 사제’란 단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 예수님의 마음을 지니고 신자들을 대하는 사제, 바로 그것이 평생 하느님을 따라 살았던 한 사제의 고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서품 때까지 이것이 내 삶의 중심이 되었다. 신자들에게 잘 하는 정말 예수님의 마음을 지닌 사제….

그리고 첫 부임지 상현동 성당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강론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열정을 지닌 사제가 되겠습니다. 매일의 삶이 타성에 젖은 삶이 아닌, 옆에 있으면 무엇인가 기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삶의 첫 마음을 간직한 열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모든 일에 임하는 사제가 되겠습니다.

저는 늘 웃는 사제가 되겠습니다. 신자들에게 겸손한 마음과 웃음으로 신자들을 대하겠습니다. 저는 강론 원고를 매일 준비 하겠습니다. 늘 변함없이 강론 원고를 매일 작성하여 말씀을 준비하는 사제가 되겠습니다.

저는 영적으로 건강한 사제가 되겠습니다. 성무일도를 빠지지 않고 바치며 성체조배를 하루에 30분 이상씩 하고 고해 성사도 충실히 주는 사제가 되겠습니다. 이런 모든 노력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건강하고 밝은 사제가 되겠습니다.“

지난 일 년 간 사도 바오로의 해를 보냈다. 사도의 열정과 사랑과 선교의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고 배우는 시간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어서 사제의 해를 맞게 된다. 이것은 이제 내적인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아르스의 성자 요안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 선종 150주년을 맞이하여 지내는 사제의 해를 통해 사제적 직무의 고귀함과 열정과 사랑을 배워야 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나는 요안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의 마음을 배우고 싶다. 자신의 직무를 통해 보여주신 신자들에 대한 마음과 사랑, 그것이 사제의 해 가장 그 중요한 의미가 아닌가 묵상해 본다. 예수님의 마음을 지닌 사제의 모습이다.

점점 교회와 인간의 참 가치를 넘어 더욱 세속화 되는 세상에서 사제의 해를 통해 진정 참 사제 예수님의 마음을 지닌 사제가 되어야 한다. 사제인 우리가 먼저 성화되고 예수님을 배워야만, 예수님의 마음을 느껴야만 진정한 예수님의 대리자가 될 수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수단을 입었던 처음 마음처럼 다시금 옷매무새를 고치고 거울을 본다. 그리고 밝게 웃어본다.

박경환 신부·상현동본당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