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수단을 입으며] 이상각 신부 - 나는 생명의 빵이다

이상각 신부·남양성모성지 전담·교구 성체조배회 지도
입력일 2009-06-09 수정일 2009-06-09 발행일 2009-06-14 제 265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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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각 신부
‘정말 잘 들어두어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진심으로 믿었던 한 자매를 만난 적이 있다.

“신부님, 여기 세브란스 병원이에요. 율리안나가 입원했는데, 신부님이 뵙고 싶대요.” “시.부.니. 아녕하셔어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찾아간 나는 어린아이처럼 어눌하게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보고 당황했다.

“네, 안녕하셨어요? 병원에 입원했다고 해서 놀랬습니다. 그런데, 오른쪽에 마비가 왔나 봐요. 의사들은 뭐라고 해요?” “치료. 바으며 나아.지. 거래요.” “그래야죠. 다행이네요.”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와 그녀의 남편에게 어떻게 된 일이지 물었다.

“지난 주 새벽에 아내가 갑자기 마비 증세를 보였어요. 신부님도 아시겠지만 아내는 선천적으로 심장판막에 이상이 있는 사람입니다. 의사들은 아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지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거나 마비 증세가 보이면 한밤중에라도 즉시 병원으로 달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가 마비 증세를 보이자마자 즉시 병원으로 옮기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내는 병원에 가기 전에 꼭 성체를 모셔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그럴 시간이 없다고,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성체를 모시지 않고는 병원에 갈 수 없다고 했어요. 자신의 몸이 서서히 굳어져가면서 통증을 느낄 텐데 너무도 진지하고 간절히 성체를 모셔야 한다고 했지요. 아내는 성체를 안 모시고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각오를 한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꾸 안 된다고만 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렇다고 너무 이른 시간에 신부님께 전화를 드릴수도 없고...그래서 전화해도 결례가 안 될 것 같은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본당 신부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병자 영성체를 좀 해 달라고 부탁드렸지요. 그런데 신부님이 바쁘셨는지 ‘위독하지 않으면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하셨어요. 할 수 없이 저는 ‘그럼,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와 주세요’ 라고만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나도 신부님이 오시지 않는 거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얼굴은 창백해져가고 마비가 점점 심해졌어요. 저는 너무나 다급한 마음에 본당 신부님께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지금 곧 오시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고까지 이야기했지요. 본당 신부님이 도착하셨을 때, 이미 아내는 입이 마비되어 말을 잘 할 수 없었습니다. 성체를 모시고 온 신부님을 보더니 아내는 ‘어어어…’ 하다가 말이 나오지 않으니까 마비된 오른쪽 손바닥에 왼손으로 ‘예수 사랑 용서하세요’ 라고 썼습니다. 그런 다음 감사의 눈물과 함께 성체를 받아 모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 왔지요. 아내의 상태를 보고 의사 친구들이 저를 나무라더군요. ‘야, 임마! 마비 증세가 보이면 즉시 데리고 오라고 했잖아! 목숨 건진 것도 다행으로 알아. 조금만 더 늦었으면 죽었을 거야’ 라고 하면서….

그런데 신부님, 의사 친구들의 그런 책망을 들으면서도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율리안나 자매가 그토록 신뢰했던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그 빵을 받아 모시고 그분의 생명과 사랑을 우리 안에 간직한다면 죽어도 아주 죽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게 된다는 것을 믿음 없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렇게 급한 상황이면 나한테라도 연락을 하지 그랬어요?”

“그땐 당황해서 그런지 신부님 생각이 안 났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아내가 성체를 모셨고, 또 저렇게라도 살아있으니 다행이고 감사하잖아요.”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어 주신 살은 온갖 인간적 수고와 공덕을 초월하고 인간의 모든 소망과 욕망을 무한히 초월하는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참된 음식이라는 것을 나는 그들 부부를 통해 새삼 확인하고 감사했다.

이상각 신부·남양성모성지 전담·교구 성체조배회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