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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보는 교회 미술 산책] (6)에밀 놀데의 ‘최후의 만찬’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8-03-16 수정일 2008-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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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 마셔라, 이는 내 피다”

화면 중심은 성배를 감싼 예수의 투박한 손

거친 터치, 강렬한 색깔로 구원 약속 드러내

지난 연말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거의 10여년을 해왔던 친한 친구들과의 연말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특별히 중요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연말의 시끄러운 분위기를 피해 집에서 갓 뽑아 내린 커피와 함께 조용히 지나간 날들을 생각하며 정리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물론 잔뜩 차려진 뷔페 음식을 접시에 가득 담아와 게걸스럽게 먹으며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떠는 만남이 가치 없다는 오만도 있었다. 그런데 거실에 앉아 창밖을 오가는 자동차 불빛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가 그다지 맛있지 않았고 고고한 품격을 느끼게 하지도 않았다.

거실은 평소보다 더 춥게 느껴졌고, 리모콘으로 1분 간격으로 TV 채널을 바꿔댔지만 어떤 프로그램도 내 마음을 붙들지 못했다. 결국 추운 발을 비비며 친구들에게 만남에 참석치 않아 미안하다는 문자메세지를 보냈고, 그러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어 커피 한잔이 더 생각이 났다. 그 동안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있었고, 그들과의 연말 식사는 내 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예수께서도 잡혀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만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셨다.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이별의 섭섭함도 달래고 싶었을 것이고, 당부의 말씀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성서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첫 째는 ‘유다의 배반’에 대한 예고이며, 두 번째는 ‘영성체를 통한 구원의 약속’이다. 예수께서 죽음을 예언하고, 또한 그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은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형상화되었다.

그러나 화가들은 두 가지 이야기 모두를 한 화면에 표현할 수 없었고 당연히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했다.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유다의 배반’에 대한 예고를 주제로 하고 있다. “너희 중의 한 명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놀라 “그 자가 누구입니까?, 저 입니까?”라고 반문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20세기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는 영성체를 통한 구원의 약속을 형상화하였다. 놀데의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마태 26, 20~29)라고 말씀하시는 중이다.

놀데의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성배를 두 손에 꼭 쥐고 당신의 몸과 피를 통한 구원을 약속하고 계신다. 비스듬하게 감은 눈과 우수에 찬 듯한 얼굴 표정은 그 분의 비장하고 굳건한 결의를 가시화하고 있다.

예수는 제자들에 의해 원형으로 둘러싸여 화면의 중심에 있고, 제자들은 누가 스승을 배반할 것인지 서로 의심하며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주는 몸과 피를 받아먹을 동지로서 서로서로 어깨에 손을 얹고 유대감과 동료애를 끈끈하게 교환하고 있다.

우리들 역시 드라마틱한 이 사건에 동참하고 있다. 다시 말해 화면 전경의 예수와 마주 앉아 등을 보이고 있는 제자들의 위치에 우리도 함께 앉아 예수께서 하시는 구원의 약속을 듣고 있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화면의 중심은 예수라기보다 성배를 감싸 안고 있는 크고 투박한 손이다. 거칠고 투박한 예수의 손, 예수뿐 아니라 제자들의 허름한 옷차림, 서로 부대끼며 앉아있는 듯한 매우 협소한 장소 등은 가난과 초라함을 극적인 긴장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육체노동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 같이 거칠고 남루한 예수의 모습은 그분이 낮은 곳에서 왔으며, 또한 낮은 곳에 계시기를 스스로 원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곳에는 모두가, 그리고 모든 것이 허름하고 구차하다. 식탁 위에는 아무 것도 없다.

마지막 식사인데도 제대로 된 음식 하나 없고 예수가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는 성배만 있을 뿐이다. 풍요로운 음식 대신에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실 것이다. 놀데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붓 터치, 섬광 같이 빛나는 강렬한 빨강과 노랑 등의 원색으로 가난하고 미천한 곳에 내리는 그리스도의 은총과 희망, 구원의 약속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후의 만찬’에서 보듯이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약속하지 않으셨다. 세상살이로 보면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유언을 하는 순간이다. 상속은 그 분의 ‘몸과 피’다. 그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이 유언을 받들기 위해 베드로의 반석 위에 교회는 세워졌고 2천 년이 넘도록 교회는 존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는 관심이 없고 날마다 명문대 입학, 승진, 사업 성공 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한다.

요즈음 성당은 새벽마다 참배하는 신자들로 넘쳐난다고 하는데 그들 중 몇이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기 위해 기도할까. 이 말을 하고 있는 필자도 ‘예수의 몸과 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김현화(베로니카)

숙명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Tip

‘표현주의’는 형태가 객관적인 현실로부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반응으로부터 나타난다고 보는 미술 운동이다. 작가 개인의 자아와 주관적 표현을 추구하는, 일종의 감정표출의 예술로 20세기초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지서 전개됐다.

에밀 놀데는 독일 표현주의 화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판화가와 수채화가로도 잘 알려져진 그는 특히 성경 내용을 격정적인 붓터치와 열정적인 원색으로 마음껏 표현한 종교화로도 유명하다.

19세기 인상파 이후 화가들은 가능한 한 태양 빛에서 그대로 표현되는 원색을 즐겨 사용했다. 정열적인 표현을 위해서였다. 놀데는 표현주의의 선구자인 반 고흐와 뭉크, 고갱 등의 그림에 깊이 공감하면서 자신의 열정을 거침없이 화폭에 옮겨 놓았다. 그의 작품은 강렬한 색채와 거친 형상으로 동시대인들에게는 거의 ‘원시적’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놀데는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인물 중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현대화가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지난 1931년 시베리아 횡단을 위해 잠시 우리나라에 들러 곳곳을 여행하며 펜과 잉크로 노인, 소녀 등의 인물화를 그렸다.(‘낭만을 꿈꾸는 표현주의 화가 에밀 놀데’ 김혜련 저 중) 그가 그린 작품 중 ‘한국 노인’을 보면 당시 일제 통치하의 암울한 시대 상황을 반영한 듯 절망스런 표정을 여실히 드러나기도 한다.

우리나라를 여행 중에 그린 다양한 그림들은 독일 북부 제빌에 있는 ‘아다와 에밀 놀데 재단’에 소장돼 있다.

그림설명 : 에밀 놀데(Emil,Nolde, 1867~1956), '최후의 만찬', 1909, 캔버스에 유채, 86×107cm,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