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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눈으로 본 신앙] 17.동물의 왕국

입력일 2007-10-28 수정일 200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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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바보’인가?

예수님은 지구상에서 가장 척박한 땅 이스라엘의 사막 한 가운데 작은 촌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이스라엘은 당시 로마의 식민지이었다.

우리나라 독자는 일제 통치 역사를 통해 식민통치의 이스라엘 국민이 당시 얼마나 치욕스런 삶을 살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그 식민지배하에서도 더럽고 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말먹이 통 구유에 눕혀졌다. 가장 아랫자리에 태어난 셈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선택이다.

몇 해 전 기회가 있어 이스라엘을 여행할 수 있었다. 어디를 가나 모래이었고 물이 귀했다. 물 공급원이라고는 해발 1km 이하의 갈릴래아 호수가 전부이었다.

호수에서 끌어올린 물을 고무 수로를 통해 전국에 분배하고 있었다. 지금은 수로와 파이프를 통해 갈릴래아 물을 쓰지만 옛날에는 물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베두인들은 처참한 사막의 거지 하이에나 그대로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당시 헤로데가 살았다는 궁궐을 보니 호화로움이 극을 달했고, 그 때문에 수탈당했을 서민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믿지 않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동물의 왕국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과 복음의 진위를 의심하고 그 역사적 사실을 따진다. 더구나 하느님이 사람으로 육화되어 오셨다고 하면 고개를 돌린다.

시작부터 하느님을 자신들과 똑같은 존재선상에 놓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로또 복권을 사고, 증권을 하면 대박이 나기를 기다리며 기적을 바란다.

그러다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고 늙어갈 때 비로소 하느님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지고 힘이 들어 도움을 청할 정도로 절박하면 하느님을 찾는다. 사람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많은 사람들의 대인관계를 보면 매우 이기적인 면을 볼 수 있다. 마치 동물을 닮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판단하는데, 그 사람 됨됨이가 어떤가 보다는 재산, 주변 인물, 생김새, 차림새가 어떠한지 외적인 요소를 더욱 중요시하는 것을 발견한다.저 사람을 내가 얼마나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만나면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어느 회사에 다니는가, 부모는 무엇 하는 사람인가, 재산은 얼마나 되는가?’ 등을 따진다. ‘조건’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주요 관점인 것이다.

사람 됨됨이 또는 대인 관계나 사고방식 등을 따져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이용할 가치를 따지는 사람은 모든 삶을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구도와 연결하여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방을 ‘어떻게 하면 내 삶을 기름지게 하는데 도구로 사용할까?’하는 가치로만 생각한다.

오늘도 본능에 충실하여 다른 동물을 먹이로만 생각하는 사자와 하이에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목을 물고 잡아먹는다. 세례자 요한의 목을 딸 선물로 삼았던 헤로데와 그 추종자, 동족을 수탈하고 고문하며 자신의 이익을 구했던 일제 추종자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살면 되는 현대인들…. 그들 눈에는 수도원의 수도자, 가난한 이들을 돕는 봉사자, 평생 하느님께 봉사하는 성직자가 바보로만 보인다.

그렇다면 남을 돕고 내어주는 삶은 바보이고 빼앗고 짓밟는 삶은 영리한 삶인가?

다시 예수님을 묵상해 본다. 예수님은 가장 가난하게 태어나셨고 가난하게 돌아가셨다. 마지막에는 온 몸에 걸친 것 하나 없이 많은 사람 앞에 죄인처럼 온갖 수모와 고통을 겪으며 죽었다. 그리고 가진 것 모두를 우리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밀떡의 모습으로 바뀌어 오늘도 오신다.

죽기 전에 예수님은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이것은 나의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며, “이것은 나의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고 명령하셨다.(1코린 11, 24~25)

우리는 무엇보다도 소중히 이 예식을 행한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 아직도 굶주린 하이에나나 사자처럼 나 자신의 이익과 본능만을 위하여 먹이를 쫓아 하느님을 짓밟고 살아야 하겠는가.

국일현(그레고리오·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