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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눈으로 본 신앙] 15.선택의 시작

입력일 2007-10-14 수정일 200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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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선택사항’ 인가

계룡산 밑에는 굿 당과 도 닦는 사람들이 많다. 땅거미가 드리워지고 밤이 되면 저 멀리 산 속에서 굿하고 징치는 소리가 아련히 들린다. 신들린 사람들이 밤에 귀신을 부른단다.

사람들은 다급해지면 보살과 도사를 찾고, 자식 수능 점수를 올려달라고 신령님께 빌고 점쟁이에게 여윳돈을 어디에 투자할지 묻는다. 이들은 하느님을 서양 귀신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주역, 팔괘, 일월성신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하면서 TV에 나와 사람을 미혹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번개치고 태풍이 오고 가뭄과 기근이 오는 것이 북태평양 고기압과 국지성 기압골의 이동으로 해석하고, 인공위성의 관찰과 분석으로 일기예보를 하는 시대다.

아직도 원시시대에 사는 사람은 깨어나야 한다. 주역과 팔괘, 태극과 무극, 별과 행성, 산과 바다, 구름과 비도 하느님의 진리에 의해 일어난 현상과 인간의 눈으로 본 논리일 따름이다.

광대무변한 우주 저편의 은하계나 달에 일월성신이 있는가. 계룡산 속에 산신령이 꼭꼭 숨어사는가. SF영화에 나오듯 땅을 뚫고 들어가면 맨틀이나 지구 핵 위치에 지옥이 있고 지하세계 용암 속에는 귀신들이 득실득실하게 모여 사는가. 안타깝게도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토정비결을 보고 점을 치고 귀신을 부른다.

우리는 이글거리는 용암 위에 꿈틀거리는 염이 깔리고 얇은 껍질이 덮인 지구라는 동적 안정체 위에 살고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초당 30km 속도로 공전하고 24시간에 한 번 자전하는 지구는 반지름이 6378km이지만 그 껍질(지각)은 5~50km 밖에 되지 않는다. 그 밑에는 규산염으로 구성된 맨틀 층이 2800km 깊이까지 있고 그 맨틀은 매년 조금씩 대류하며 열적, 중력 평형을 이루고 꿈틀댄다.

지구의 중심은 철 성분 등 무거운 물질이 고온 용융 상태로 핵을 이루고 있다. 가끔 이웃 일본에서는 지진이 일어나지만, 염을 뚫고 나온 쇳물재가 하늘을 가리려면 1억 년이 더 남았다니 참으로 고맙다.

지금까지 쓴 글을 종합하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 거대한 존재와 현상이 단 하나의 의지에 의하여 지배되고, 그 지배하는 진리는 하나로 묶여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의 진리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가장 합리적인 상태의 체계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이 동적인 조화에 어떤 변화를 주면 모든 것은 이 변화와 어우러져 또 다른 조화로운 상태로 변한다.

양자역학적으로, 열역학적으로, 유전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생태학적으로, 상대론적으로, 우주질서에 맞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상태로….

물속의 물체를 잡으려고 손을 넣어보면 그 물제가 다른 곳에 있는 경험을 한 일이 있을 것이다. 물에서 빛이 굴절하기 때문이다. 돋보기로 빛을 모으는 것과 같은 논리다. 빛은 간섭현상과 회절 현상을 일으켜 물질의 결정구조를 밝혀내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20세기 초까지는 빛을 파동으로만 보고 우주 공간에 에테르라는 매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발표되고 빛은 입자 특성도 갖고 전자파 특성도 갖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양자역학적 해석은 하이젠버그의 불확정성원리라는 벽에 부딪쳤고 이제는 과학도 하나로 묶여지는데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였다.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은 실존하는 사실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소립자를 확인하고, 게놈 지도를 그릴 수 있고,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관찰했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른다. 단백질 한 분자가 어떻게 왜 합성되는지, 극히 제약된 시공간의 조건 때문에 우주 팽창의 종합적인 그림도 모르고, 새로운 소립자 존재를 발견해도 수십만 분의 일초 밖에 존재하지 못한다.

코끼리의 발톱만 본 개미가 거대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모습을 그릴 수 있겠는가. 이런 현대과학 지식의 일부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들은 마치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자만하고 산다.

더구나 하느님의 존재마저 자기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선택을 하는데 아직까지 많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은 선택이 아니며, 믿고 따르는데 주어진 시간은 극히 짧다. 그 짧은 세월을 반성하며 살아도 턱없이 부족한데 주님을 부정하고 핍박하고 살면 어쩌자는 것인가.

국일현(그레고리오·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