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밀라노에서 온 편지」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2-12-13 수정일 2022-12-13 발행일 2022-12-18 제 332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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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철 신부 지음/264쪽/1만7000원

“밀라노와 사랑에 빠지는 시간, 하루면 충분하다”
교의 미술 전공하며 머문 밀라노
발품 팔아 알게된 숨은 명소 소개
성당·성지에 담긴 이야기 풀어내
다양한 예술품도 만나볼 수 있어  

로마의 '천사의 다리'. 그 너머로 바티칸궁이 보인다. 생활성서 제공

“기차 환승을 위해 밀라노에서 몇 십 분만 있다가 떠나야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박홍철(다니엘) 신부는 책을 시작하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맛집 탐방, 관광, 패션 투어, 쇼핑…. 도대체 무엇을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소문은 둘째 치고 몇 십 분이라니 너무 짧아 보인다. 밀라노에서 그 짧은 시간을 얼마나 값지게 보낼 수 있을까.

밀라노라고하면 이탈리아 북부 최대도시이자 패션, 금융, 쇼핑의 중심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사실 밀라노는 유구한 전통의 암브로시오 전례를 보존해온 곳이자 고딕 양식으로 유명한 밀라노대성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교의 미술’(Art and Dogma) 전공자인 박 신부는 이 밀라노 곳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 안에 숨어 있는 신앙의 보화들을 선사한다. 박 신부는 말한다. “밀라노와 사랑에 빠지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

박 신부는 밀라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개략적인 밀라노 탐방부터 소개한다. 밀라노에서 ‘십 몇 분’이 주어진다면 이란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서 한 시간, 세 시간, 하루에 이르기까지 밀라노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 좋은지를 재치 있게 풀어내며 밀라노와 친해지는 방법을 설명한다.

박 신부는 밀라노의 브레라 국립 미술원에서 교의 미술을 전공하며 5년 여를 밀라노에 머물며 밀라노 곳곳의 성미술을 만나왔다. 특히 박 신부가 전공한 교의 미술은 교회의 아름다운 가르침인 교의를 예술적인 시설에서 재해석하려는 분야다. 박 신부는 전문가의 시선에서 밀라노 현지를 잘 아는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와 사람들을 풍부한 감성을 담아 전한다.

책은 무엇보다 밀라노의 성당과 성지에 담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보고다. 박 신부는 밀라노 대성당, 산 크리스토포로 성당, 산 에우스토르조 대성당, 산 사티로 성당 등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들을 서사적으로 그려나간다. 그리고 기적의 성모 마리아 성지라고도 하는 산타 마리아 프레소 산 첼소 성당, 성체성사의 기적이 일어난 산타 마리아 인바도 성당, ‘기다림의 성모’ 등의 전승도 들려준다.

책에는 밀라노에 자리한 예술품들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가득해 교황청의 시스티나 성당과도 비견되는 산 마우리치오성당, 르네상스 시대 회화를 비롯해 고금의 귀한 작품들을 소장, 전시하는 브레라 미술관, 나치 정권의 유다인 말살 정책으로 죽어 간 이들을 기리며 그들이 살았던 거리에 설치한 ‘스톨퍼슈타인 기념비’ 등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예술품들을 글과 그림으로 감상하게 해준다.

밀라노는 단순히 오래된 건축과 예술이 남아있기만 한 도시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다. 박 신부는 밀라노라는 도시의 건축과 예술에 머물지 않고 밀라노의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는다. 상냥한 필체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밀라노가 사랑한 사람들, 조금 생소하기도 한 밀라노대교구의 ‘암브로시오 전례’, 밀라노 사람의 삶에 이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스며든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